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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日 개발 초기… '금수저'부터 없앴다

바람아님 2016. 1. 24. 11:30

(출처-조선일보 2016.01.23 신동흔 기자)

2차 대전 後 일본·한국 토지개혁… 농민들 자본과 땅 골고루 갖게 돼
이로 인해 형성된 '자유 시장'… 제조업으로 나갈 수 있는 기틀로

빌 게이츠 "동아시아 토지개혁, 아프리카에도 적용될까" 기대

'아시아의 힘'아시아의 힘|조 스터드웰 지음|김태훈 옮김|프롬북스|504쪽|2만3000원

중국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6.9%로 주저앉으며 25년간 이어진 고(高)성장 신화도 막을 내리리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증시 상황이나 기업 수익률 어느 것 하나 좋은 징후는 없다. 
이런데도 하이얼이 GE의 가전 부문을 인수하는 등 해외 M&A는 활발하다. 
중국은, 그리고 아시아는 어떻게 될까. 빌 게이츠가 자신의 서평(書評) 블로그와 테드(TED) 강연에서 
추천하며 유명세를 얻은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의 인구 구조 변화와 정치 엘리트의 통치 방식 등 
경제외(外)적 변수를 유심히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7년부터 대(對)중국 투자자용 잡지 '차이나 이코노믹 쿼털리' 편집장으로 일하며 아시아 
정·재계 거물(巨物)들을 다룬 '아시아의 대부들(Asian Godfa thers)' '차이나 드림' 등을 쓴 저자는 
공산당 엘리트들이 실력이나 실적보다 출신에 의존하며 합의에 따라 사리(私利)를 추구하는 통치 형태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른바 '귀족 정치'는 자기를 챙기는 경향을 보이며, 경제 정책과 관련된 어려운 결정은 회피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2030년부터 중국은 약 3억명의 연금 생활자가 저축한 돈을 쓰기 시작하고, 전체 인구는 15억 미만에서 
감소 추세로 돌아서게 된다. 저자는 "중국이 앞으로 10년 동안 금융 위기를 피한다고 해도, 인구 구조가 경제적 잠재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저자의 관심은 중국에만 있지 않다. 원제 '아시아는 어떻게 움직이는가(How Asia Works)'처럼 2차 대전 이후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에서 발견되는 발전 패턴을 찾는 데 집중한다. 
그는 한국·대만·일본의 성공 비결을 
'토지 재분배와 가족농 지원' '잉여 수입의 저축과 제조업 지원' '국가 주도의 금융 정책' 등 세 가지로 압축한다. 
저자는 2차 대전 후 진행된 일본·한국·대만의 토지개혁 덕분에 동아시아 개발도상국에 이전엔 존재한 적 없었던 
'자유 시장'이 형성됐다고 본다. "토지개혁 이후 만큼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지주가 없었고, 
자본과 땅을 갖지 못한 농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경쟁할 기회를 얻었다."
왼쪽부터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 한국 원화.
동아시아는 토지개혁, 수출 위주 제조업 등 비슷한 성장 모델이 
작동했다. 왼쪽부터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 한국 원화. 
/Getty Images Bank
광복 직후 토지 보유 농가가 10%에 불과했던 한국도 60년대 초에 농가의 70%가 토지를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저자는 "농업이 산업화 이전 방대한 인구를 고용했고, 자기 땅에 농사를 지으며 생산량을 극대화했다"고 본다. 
이를 통해 일본·한국·대만은 제조업으로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반면 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 등은 전근대적인 지주·소작농 구조에 묶여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 주도로 이뤄진 수출 제조업 지원 과정에서 일본은 관(官) 주도로 수출 이익의 최대 80%까지 면세 혜택을 주는 등 
자유 무역 원칙에 위배되는 정책도 서슴지 않았다. 
저자는 "빈국(貧國)은 부국이 홍보하는 '자유 시장' 경제를 따르는 것처럼 하면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저자는 1930년대 일본이 군대를 앞세워 중화학공업 육성을 추진했던 만주 지역에서 
식민지 군대의 장교로 근무했던 박정희 전(前) 대통령의 경험이 집권 이후 산업화 드라이브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도쿄에서 자카르타까지 구석구석을 다녔다. 
한국 중소도시 풍경을 묘사할 때 "한국인들은 대통령 관저를 지은 사람들처럼 푸른 지붕을 좋아한다"는 대목도 보인다. 
대중서로 보기엔 너무 분석적이고, 경제 연구서로 보기엔 일화 중심이라는 말도 듣는다. 
읽는 사람에 따라 관심을 갖는 내용이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는 아프리카를 지원하는 데 아시아의 토지개혁 모델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자신이 세운 게이츠&멀린다 재단의 직원들에게 이 책을 읽히기도 했다.

중국에 대해선 별도로 한 개의 장(章)을 할애할 정도로 관심을 보인 반면 고령화와 정보기술(IT) 발달, 
이에 따른 제조업 이익률 하락, 일자리 부족 등 아시아 국가들이 고성장을 거쳐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