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음악칼럼 283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7] 패자의 승복

조선일보  2024. 11. 17. 23:54 R.E.M. ‘Everybody Hurts’(1992) 1984년 시즌이 저물어 가면서 한국 프로야구계는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이만수가 초유의 타격 3관왕을 차지할 것인지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미 홈런왕과 타점왕은 따놓은 당상이었다.....삼성 김영덕 감독은 타율 관리를 위해 이만수를 결장시키고 하필 마지막 두 경기에서 만난 롯데의 홍문종에게 무려 9개의 고의 사구를 지시하며 이만수를 기어코 타격 3관왕으로 만든다. “비난은 한순간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는 명언 아닌 명언을 남기며.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애칭을 지닌 타격 3관왕은 그 후 40년이 흐르는 동안 롯데의 이대호만이 누려본 최고의 영광이다. 역사가 잔인한 것은 그것이 승리자를 위한 레드 카펫이기..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6] 사랑의 힘

조선일보  2024. 11. 10. 23:50 Celine Dion ‘The Power of Love’(1993) 11월 11일은 초콜릿이 발린 스틱 과자의 상품명을 빌려 와 빼빼로데이로 불린다. 이젠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능가하는 이 데이 마케팅의 전설은 1993년 부산의 한 여고에서 시작되었다. 즉 이 비공식적인 기념일은 앞의 두 기념일과는 달리 이윤을 노린 기업의 마케팅 기획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아라비아숫자 11이 나란히 있는 모양이므로 중국에서는 솔로들의 날이라는 뜻의 광곤절(光棍節)로 자리 잡았다. 이날은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처럼 젊은 세대를 겨냥한 대규모 할인 행사를 하는 날로 정착돼 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올드 야구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롯..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5] 여성 유권자

조선일보  2024. 11. 3. 23:54 Tammy Wynette ‘Stand By Your Man’(1968) 마지막 투표함이 열릴 때까지 모른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역사상 유례없는 초박빙 양상이 개표 막바지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그런데 공화당 트럼프 후보의 부인 멜라니아는 거의 은둔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을 꿈꾸며 정력적으로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해리스 후보의 남편 엠호프와는 다르다. 멜라니아는 선거보다는 자신의 회고록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인상이다. 많은 선거 전문가는 이번 선거가 여성 유권자와 백인 남성 노동자층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1992년 대선 과정에서 클린턴의 배우자인 힐러리는 “태미 와이넷의 노래처럼 남편 옆이나 지키는..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4] 맥도널드 햄버거

조선일보  2024. 10. 28. 00:12 Wesley Willis ‘Rock’n’Roll McDonald’s’, (1995) 패스트푸드로서는 단연 세계 1위 기업. 코카콜라·아이폰과 함께 미국 자본주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맥도널드. 1954년 시카고에서 프랜차이즈 1호점을 연 이래 승승장구하고 있다.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동산을 보유한 기업이다.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인 맥도널드 형제가 자신들의 이름을 딴 드라이브 인 노점을 연 것은 1940년이었다. 당시 맥도널드는 주력 메뉴가 햄버거가 아닌 바비큐였다고 한다. 형제는 곧 한계를 깨닫고 시스템을 간편하게 바꾼다. 즉석에서 최소한의 시간과 인력으로 공급할 수 있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음료수로 메뉴를 축소했다. 또한 주문 시스템..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3] 밥 딜런과 노벨 문학상

조선일보  2024. 10. 20. 23:54 Bob Dylan ‘Murder Most Foul’(2020) 1964년 노벨 아카데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를 지명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어떤 인간도 살아있는 동안 신성시되길 원치 않는다”고 피력하며 수상을 거절했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 문학상 사상 초유의 수상 거부다. 물론 그 이전인 1958년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소련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수상 거부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양측 진영 간 첨예한 갈등 때문이었다. 또 파스테르나크의 아들이 30년 지난 뒤 대리 수상한다. 사르트르는 노벨상 이전에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도 거부한 적이 있다. 프랑스 고..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2] 미슐랭 가이드의 별

조선일보 2024. 10. 14. 00:03 Drake ‘The Ride’(2011) 음식을 주제로 다루는 영상 콘텐츠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서양 지상파 매체의 예능·교양 분야의 주축 프로그램이었다. 한 사회의 평균 소득이 올라갈수록, 가족 제도가 핵가족화할수록 음식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력해진다. ‘살기 위해 먹었던’ 빈곤의 터널을 지나면 ‘먹기 위해 사는’ 라이프스타일이 확신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라는 영상 플랫폼이 세계를 통합하면서 이제는 ‘자극하(받)기 위해 먹는’ 엽기적인 ‘먹방’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출현하고 사라진다. 음식 영상물의 최대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가성비에 있다. 비교적 낮은 제작비로 대중적인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재가 음식인 것이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흑..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1] 팝음악 속의 한글

조선일보  2024. 10. 7. 00:10 Fugees ‘Fu-Gee-La’(Refugee Camp global mix)(1996)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들어선 지 꼭 15년. 아마도 창제자가 명시된 세계 유일한 언어일 한글의 580년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조선이 무너질 때까진 한자가 지배 계급의 문자였고 일제강점기의 막바지엔 아예 금지되는 비극을 겪었으며, 해방과 분단 이후엔 영어의 파워 앞에 움츠러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류의 물결이 지구촌을 뒤덮은 21세기에 들면서 한글은 더 이상 변방의 언어라는 수모에서 벗어난다. 한국어를 전파하는 세종학당은 이미 88국에 250개를 넘어서고 있고 2027년까지 350개소로 확대될 전망이다. 2007년 몽고에 첫 학당이 만들어진 이후 눈부신 확산이며 ..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29] 와인 산업의 흥망성쇠

조선일보 2024.09.22. 23:54 수정 2024.09.23. 00:03 Al Stewart ‘The Palace of Versailles’(1978) 1970년대를 수놓은 영국 포크록 스타였던 앨 스튜어트는 유럽과 미국의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싱어송라이터다. 하지만 이 ‘베르사유 궁전’은 1987년 들국화 보컬리스트 전인권이 ‘사랑한 후에’라는 제목으로 숨 막히는 번안곡을 내놓으면서 간접적으로 알려졌다. 스튜어트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작곡가 월리엄 버드의 ‘The Earl of Salisbury’의 멜로디를 차용해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었다. 이 노래는 로베스피에르가 장악한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무너진 베르사유 왕조의 몰락을 처연하게 서술한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