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음악칼럼 284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04] 어느 내부 고발자의 죽음

조선일보 2024. 3. 25. 03:03 Jean-Michel Jarre ‘Exit’(2016) 기체 결함으로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보잉사의 조립 공정 문제점을 폭로했던 존 바넷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의 한 호텔 주차장에서 총상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미국 내 소셜미디어에서는 ‘미국 자본주의가 내부 고발자를 대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같은 실망스러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십년간 미국 사회를 강타한 가장 강력한 내부 고발자는 국가안보국(NSA) 소속 프로그래머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이다. 어릴 때부터 수재로 불렸던 그는 뛰어난 컴퓨터 능력으로 중앙정보국(CIA)을 거쳐 NSA에서 정보 보안 전문가로 일했다. 하지만 개인의 일거수일투족..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03] 의사 앞에 선 환자

조선일보 2024. 3. 18. 03:01 수정 2024. 3. 18. 05:23 AJR ‘Karma’(2019) “시간, 시간이 다 된 건 알아요/ 하지만 자꾸 슬픈 생각들이 엄습하고 멈출 수 없다면 어떡하죠/ 제가 왜 이렇게 허무한 지 진단이라도 좀 내려주세요/ 제발 처방만 내려주시면 무조건 따른다고 약속할게요..." 주치의 앞에 선 환자는 절박하다. 그리고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다. “나아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왜 난 나아지는 기분이 안 들까요(You say that I’m better, why don’t I feel better)?” 이렇게 반문하기도 한다. 애덤 멧, 잭 멧, 라이언 멧(팀명인 AJR은 이 삼형제의 이름 앞글자들을 따와서 만든 것이다)으로 구성된 뉴욕 출신의 이 트리오는 정신과..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02] 딥페이크 포르노그래피

조선일보 2024. 3. 11. 03:00 Michael Jackson ‘Privacy’(2001) “그만큼 사진 찍었으면 충분하지 않아? 왜 넌 그렇게 심하게 들이대는 거지?/너는 나 자신을 무너뜨리려고 하지/날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어?/나는 내 사생활이 필요해/그러니 파파라치, 내게서 꺼져줄래?...." 불혹의 나이에 들어선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Dangerous’ 이후 십년 만에 발표한 ‘Invincible’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는 파파라치의 과도한 욕망 앞에 희생된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죽음에 바치는 분노의 진혼곡이다. 하지만 이 노래 발표 후 그 자신도 아동 성추행 파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온갖 구설과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는 파파라치나 몰카의 위협보다 더 끔찍한 첨단 기술이 사생활..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01] 불법 이민자와의 전쟁

조선일보 2024. 3. 4. 03:01 Genesis ‘Illegal Alien’(1983) “국경 너머 약속의 땅이 있지/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지는 곳, 넌 그저 손만 내밀면 돼" 영국의 지성적인 록밴드의 대명사나 다름 없는 제네시스가 40여 년 전에 발표한 이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남부 국경의 불법 이민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목숨을 건 월경을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상 주제를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반복적 후렴구는 그런 우려를 털어낸다. “불법적인 이방인이 되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야(It’s no fun being an illegal alien).” 불법 이민자들이 합법적 절차를 걸쳐 시민적 권리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 대다수가 미..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00] 침묵을 강요하는 소리

조선일보 2024. 2. 26. 03:02 Simon & Garfunkel ‘The Sound of Silence’(1964)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듀오로 칭송되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이 명곡은 표면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의사 소통 부재를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케네디 암살과 석연찮은 수사 과정에 대한 지적인 분노를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노래는 침묵 속에서 움직이는 기득권의 보이지 않는 손과 진실로부터 격리된 대중들에 강요되는 침묵을 다룬다. “사람들은 주장하는 대신 그냥 떠들어대고/ 경청하지 않고 그저 듣고 흘리며/ 사람들은 결코 같이 부를 수 없는 노래들이나 쓰고 있네/ 그래서 아무도 침묵의 소리에 감히 대들지 못하지/ 내가 말했네, ‘바보들, 당신들은 그..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99]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조선일보 2024. 2. 20. 03:02 Katy Perry ‘Roar’(2013)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No Players is bigger than the club).” 단체 스포츠에서, 아니 스포츠를 넘어 이제는 모든 조직 경영에 금과옥조처럼 인용되는 이 짧고 간결한 격언의 출처는 명확지 않지만 지구 상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광을 이끈 앨릭스 퍼거슨 감독의 철학을 한 줄로 요약한 말임은 분명하다. 선수 경력은 이렇다 할 것이 없는 그는 감독으로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맨유에서 27년간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리그 우승 13회를 비롯해 우승 트로피를 모두 38개 들어 올리도록 이끌었다. 맨유는 그가 부임하기 전 25년간 리그 우승이 없었다...

[일사일언] 스위프트를 만든 사람들

조선일보 2024. 2. 19. 03:02 얼마 전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 부문 역대 최다 수상자가 됐다. 그녀의 시상식에서는 올해 수퍼볼을 들썩인 남자 친구이자 미식축구 스타 트래비스 켈시 대신, 스위프트가 부른 수많은 곡을 쓴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가 시종 옆을 지켰다. 시상식 하이라이트였던 스위프트의 무대는 앨범에 참여한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진이 올라가 함께 채웠다. 스위프트는 수상 소감에서도 그들을 빠짐없이 호명했다. 스위프트의 시상식을 보면 그래미를 왜 세계 최고 권위 대중음악상이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미의 시상 부문은 장르별, 직능별로 촘촘히 제정해 100가지나 된다. 매 부문 수상작 트로피는 가수뿐 아니라 작사가, 작곡가, 프..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96] ‘성난 사람들’의 음악

조선일보 2024. 1. 22. 03:00 Hoobastank ‘The Reason’(2003) 캘리포니아 출신 젊은이들이 결성한 모던 록 밴드 후바스탱크는 독일의 어느 주유소 이름에서 밴드 이름을 따왔다. 이 노래는 발표 직후 빌보드 모던 록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며 세계적으로도 10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 노래는 세상과 부딪히고 실연과 좌절을 겪으며 앞으로 한발씩 나아가야 하는 젊음의 힘겨움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한 올씩 풀어낸다. ‘TV의 아카데미상’ 에미상 시상식에서 한국계 감독과 주연배우가 참여한 ‘성난 사람들(BEEF)’이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 주연상 및 각본상 등 총 8개 트로피를 움켜쥠으로써 전 세계 드라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각본과 연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