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음악칼럼 268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82] 게토의 눈물

조선일보 2023. 10. 16. 03:00 Elvis Presley ‘In the Ghetto’(1969) ‘게토(ghetto)’는 소수 인종이나 민족 혹은 종교 집단이 거주하는 도시 안의 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빈민가를 형성하며 정치 경제적인 제재나 압박을 받는다. 중세 시대부터 유럽 전역에 설치된 유대인 거주 지역이나 나치 독일이 형성한 강제 거주 지역, 미국 대도시의 흑인 빈민가들이 이에 해당한다. 지금 화염에 뒤덮인 가자지구도 게토로 볼 수 있다. 이 ‘게토’라는 단어는 1516년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유대인 거주 지역을 설치하며 이름 붙인 것이 그 뒤로 계속 통용되었으므로 유대인의 불행한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단어는 격리와 차별, 증오, 폭력과 보복, 빈곤의 악순..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8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소녀들

조선일보 2023. 10. 9. 03:00 Maher Zain ‘Palestine will be free’(2009) 10월 7일 유대교 안식일 날 새벽, 2차 세계대전 때 진주만 기습 같은 일이 가자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무장 이슬람 단체 하마스에 의해 일어났다. 이스라엘 영토를 향한 수천발의 로켓포 공격과 함께 수백명의 무장 병력이 이스라엘군의 방어선을 순식간에 뚫고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침투하여 군인과 민간인들을 사살하고 포로로 잡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를 ‘전쟁’으로 규정하고 즉각적인 보복 공습으로 응수하면서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의 군사적 역량을 파괴하는 결정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대규모 군사작전을 천명했지만 생포당해 인질이 된 이스라엘인들의 규모가 상당하기에 이..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80] 독재자의 함정

조선일보 2023. 9. 25. 03:04 Freddie Mercury ‘The Great Pretender’(1987) 대륙굴기를 외치며 야심 차게 출발했던 중국 시진핑 정권의 전망이 국내외적 암초로 인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부동산 위기로 격발된 경제 불황은 전 지구적인 도미노를 일으키고 있고, 경기 침체의 필연적인 동반자인 청년 실업률은 지난 6월을 기준으로 21.3%라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바깥으로는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임계점을 향해 끓어오르고 있는 중이다. 천안문 사태의 주역 중 한 명이자 반체제 운동가인 왕단은 이런 시 주석의 행보에 대해 측근에게조차 의심이 많아지고 망상에 빠져 외톨이가 되는 전형적인 독재자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https://v.daum.ne..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79] Black Eyed Peas ‘Where is the Love’(2003)

조선일보 2023. 9. 18. 03:02 CIA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미 중앙정보국(CIA)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노출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비밀 첩보 업무를 담당했던 전략사무국(OSS)을 모태로 종전 후인 1947년 9월 18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으로 창설된 이 무소불위 기관은 20세기 후반 미국의 패권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자임했다. 타자를 악마로 만드는 순간 자신도 동시에 악마가 된다. 이 노래는 테러리즘과 싸운다는 CIA를 가장 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다. https://v.daum.net/v/20230918030238771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79] Black Eyed Peas ‘Whe..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관료주의 풍자한 사티의 소나티네

중앙일보 2023. 9. 12. 00:50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는 풍자와 해학을 즐겼다. 이런 그의 면모는 작품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관료적인 소나티네’ ‘차가운 소곡집’ ‘엉성한 진짜 변주곡-개(犬)를 위하여’ ‘말의 옷차림으로’ ‘바싹 마른 태아(胎兒)’ ‘배(梨) 모양을 한 세 개의 곡’ ‘지나가 버린 한때’ 등 서로 모순되는 의미의 두 단어를 합쳐 놓거나 전혀 이미지가 연결되지 않는 단어를 합쳐 놓은 것이 많다. 이 기묘한 제목은 듣는 사람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물론 그 속에 담긴 속뜻이 무엇일까 유추해 보는 즐거움도 준다. 에릭 사티는 선천적인 반골 기질의 소유자였다. 학창 시절부터 아카데믹한 음악에 반감을 품었다. 생계를 위해 몽마르트르의 한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이때 ..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78] 종이 비행기

조선일보 2023. 9. 11. 03:02 수정 2023. 9. 11. 05:11 Peder Elias ‘Paper Plane’(2023) 종이 발명 이후 종이 비행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심의 풍부한 상상력을 대표하는 상징의 지위를 놓치지 않았다. 비록 십여 초의 짧은 순간이지만 종이로 접은 비행기가 내 손을 떠나 하늘을 향해 비행할 때의 그 짜릿함은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만 하는 숙명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호주에서 개발한 종이 재질 골판지로 만든 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방공망을 무력화하며 러시아의 첨단 첨투기와 방공망 시스템을 파괴했다고 한다. 120km까지 비행이 가능한 이 골판지 드론은 정찰용으로 개발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여기에 소형 폭약을 실어 공습용으로 탈바꿈시켰다. 무기 ..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77] 정치인의 이혼

조선일보 2023. 9. 4. 03:05 Billy Joel ‘Just the way you are’(1977) “‘당신을 사랑해’라고 난 말했고 그건 영원할 거예요/그건 진심으로 약속합니다/이보다 더 당신을 사랑할 순 없어요/그저 지금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는 팝음악사의 클래식이 된 이 노래는 하나의 노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움켜쥐었다. 1979년 그래미 어워드는 이 노래에게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와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를 안겨줬다. 이 노래는 긴 무명 시절부터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마침내 결혼하게 된 빌리 조엘의 아내 엘리자베스 웨버의 생일 선물로 헌정한 곡이라서 더욱 애틋하다. 기약 없는 무명 생활 중에 빌리 조엘은 밴..

부와 명예 싫다, 방랑하며 작곡 몰두 ‘가곡의 왕’ 슈베르트

중앙SUNDAY 2023. 9. 2. 00:30 민은기의 클래식 비망록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 장례식장에서 그 어떤 조문객의 인사보다 큰 위로가 된 것은 휴게 공간 벽면에 걸려있던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이었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교하곤 하지만 평소에는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물질과 권력을 끝없이 욕망하면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내세를 믿는 종교인들도 있고, 깊은 곳에 은둔한 현자들도 있으니까. 음악가들 중에는 슈베르트가 그랬다. 그는 이 세상에 얽매이기를 거부하고 평생을 방랑자로 살았다. 슈베르트는 그야말로 타고난 천재였다. 어려서 그에게 음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