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79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78] 배우 박신양이 그린 사과

조선일보 2025. 4. 21. 23:57 지난 10일 한국에서 71년간 사목한 프랑스 출신 두봉 레나도 주교가 96세로 선종했다. ‘사과 10’은 배우이자 화가 박신양(1968~)이 두봉 주교에게서 받은 사과를 그린 회화 20여 점 중 하나다.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배우 박신양을 모를 리 없다. 대중에게 박신양은 재벌 2세거나, 사채업자, 아니면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영상 편지를 남기는 순정남이다. 박신양과 극 중 인물이 이질감 없이 겹쳐 보이는 것은 그가 연기를 하는 동안 ‘바로 그 사람’이 되기 위해 극한의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박신양은 현실이 매우 생소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박신양은 두봉 주교를 찾아갔고, 두봉 주교는 그의 이야기를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77] X 부인의 초상화

조선일보 2025. 4. 14. 23:56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1856–1925)는 미국 출신 화가로, 19세기 말 유럽 상류층의 세련된 이미지를 화려한 붓질과 세밀한 관찰력으로 포착해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남긴 초상화 수백 점 가운데 사전트 스스로가 ‘최고 작품’이라고 단언한 건 바로 이 ‘X 부인의 초상화’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버지니 고트로. 프랑스 은행가의 미국인 아내였던 그녀는 특이한 미모와 대담한 행각으로 파리 사교계를 사로잡았다. 초상화란 모델이 화가에게 의뢰하는 법이지만, 이 초상화만큼은 화가가 고트로 부부를 설득한 끝에 성사됐다. 같은 미국인으로서 파리에서 성공을 꿈꾸던 젊은 화가 사전트는 최고 유명인의 초상화를 그려내면 상류층 고객이 줄을 서리라고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74] 르누아르가 그린 무도회

조선일보  2025. 3. 24. 23:56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독자들 눈에도 익숙하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어딘가 낯선 구석이 있다. 틀림없이 같은 배경, 같은 인물들인데 얼굴과 의복의 세부가 흐릿하고 색채 또한 조금 어둡다. 사실 르누아르는 같은 해에 똑같은 작품을 두 점 그렸는데, 널리 알려진 건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이고, 지금 이 작품은 작은 버전이다. 이 그림은 1990년 5월, 일본 기업가 사이토 료에이가 소더비 경매를 통해 7800만달러(당시 환율로 557억원)에 구매했는데, 그는 동시에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8250만달러에 구입해 세상을 놀라..

버려질 뻔했던 흑인 초상화 '클림트' 진품 확인…235억원 가치

뉴시스  2025. 3. 23. 01:00 버려질 뻔했던 아프리카 왕자 초상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진품으로 확인됐다. 이 그림의 가치는 1600만달러(약 235억원) 이상으로 책정됐다. ZMF 20일(현지시각) BBC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1987년에 그린 아프리카 왕자 초상화가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유럽 미술 박람회(TEFAF)에서 공개됐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가나 지역 오수 부족 출신의 윌리엄 니 노티 다우온 왕자다. 이 작품은 198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종 전시회' 기간 동안 그려졌다. 이 작품은 1923년 경매에 출품됐으나 판매 여부가 불분명했고, 이후 클림트의 작업실을 인수한 어니스틴 클라인씨가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클림트의 ..

엄마의 마음[이은화의 미술시간]〈362〉

동아일보  2025. 3. 19. 23:09 푸른 방 안에 푸른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푸른색 의자에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책 표지도 푸른색이고 벽에 걸린 그림 속 성모도 푸른 옷을 입었다. 커다란 창을 통해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는데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뜨개질에만 집중하고 있다. 아나 안셰르가 그린 ‘푸른 방의 햇빛’(1891년·사진)은 이렇게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안셰르는 덴마크 최북단의 어촌 마을 스카겐 출신으로, 당대 가장 혁신적인 화가로 손꼽힌다. 그림 속 방은 그녀의 어머니가 실제로 쓰던 방이고, 아이는 당시 여덟 살이던 딸 헬가다. 안셰르의 엄마는 남편과 함께 호텔을 운영하면서 여섯 자녀를 낳아 길렀는데, 유독 막내인 안셰르에게 헌신적이었다.....딸이 동료 화가 미샤엘 ..

"아들보다 어린 남자와 재혼"…누구도 막지 못한 그녀 정체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한국경제  2025. 2. 1. 13:31 '몽마르트의 여인' 수잔 발라동(1865~1938) 어머니의 사랑으로 시작해 날것의 삶을 그리다 “저기요, 계십니까! 좀 나와보세요!” 1909년 어느 여름날 밤, 프랑스 파리 근교의 커다란 저택 앞. 대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온 중년 여성은 낯선 청년과 마주쳤습니다. 청년의 옆에는 그녀의 아들이 술에 만취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아드님 친구인데요, 술을 마시고 너무 취해서 제가 데려왔습니다.” “참, 매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고마워요. 다음에 밥이나 한 번 먹으러 와요.” 어머니와 아들의 친구가 한 번쯤 나눌 법한 평범한 대화. 그런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왠지 이상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부축해 들어간 뒤에도, 청년은 닫힌 대문 앞에서..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66] 고종 황제 초상화

조선일보  2025. 1. 21. 00:07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초상화다. 위엄 서린 황룡포가 무색하게 다소곳이 두 손을 모아 잡고 섰다. 1898~1899년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화가 휘베르트 보스(Hubert Vos·1855~1935)가 직접 황제를 앞에 두고 그린 것이다. 보스는 로마와 파리에서 수학하고, 런던에서 초상화가로 입지를 굳힌 뒤, 1893년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참관했다. 시카고에서 그가 눈여겨본 건 아메리카 원주민, 이집트인과 에스키모 등 비서구권의 이국적인 여러 종족을 한데 모아 전시한 ‘인류학’ 부문이었다. 보스는 이토록 다양한 인종이 사라지기 전에 그 모습을 기록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길을 떠나 하와이,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 중국을 두루 다녔다. 조선에서 왕의 초상이란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61] 떠도는 도시들

조선일보 2024. 12. 16. 23:51 ‘보따리를 싼다’는 말은 하던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떠난다는 뜻이다. 그곳이 어디든 머물던 데서 완전히 떠나려면 아쉽고 서글프다. 어린 시절, 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한 미술가 김수자(1957~)는 보따리를 싸고 푸는 일에 익숙했지만, 여러 번 했다고 해서 떠나는 일이 수월해지는 건 아니다. 1997년, 김수자는 보따리 수백 개를 트럭에 싣고 그 위에 올라타, 유랑하듯 머물다 떠났던 전국 방방곡곡을 11일 동안 달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불을 펼쳐두면 안락한 잠자리가 되지만, 그 이불보에 물건을 챙겨 묶으면 이별을 앞둔 보따리가 됐다. 보따리 안에는 한 사람의 아침에서 밤까지, 탄생에서 죽음까지, 사랑에서 이별까지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김수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