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72

“무려 29살 연하 女배우와 커플?” 스캔들…‘환상의 호흡’ 남녀는 사랑인지, 우정인지[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프레더릭 레이턴 편]

헤럴드경제  2024. 7. 6. 00:11 [작품편 111. 프레더릭 레이턴] 老화가와 젊은 모델 사랑과 우정, 열정과 헌신 사이 시몬과 이피게니아 포로가 된 안드로마케 타오르는 6월 그녀는 초겨울 첫눈처럼 해사했다. 적갈색이 섞인 풍성한 금발 머리카락과 진한 이목구비는 청량함을 한껏 머금었다. 연한 보랏빛 눈동자, 작은 얼굴에 비해 큰 키와 긴 팔다리는 묘하게 신비로운 인상까지 줬다. "베링턴 부인. 무대 맨 뒤에 있는 저 애가 혹시…?" "역시 연륜이 있으십니다. 맞아요. 제가 말했던 소녀." …드디어 찾았다. 화가 프레더릭 레이턴은 감격에 젖었다. 사실 처음에는 베링턴 부인을 믿지 않았다. 이웃집 여인인 그녀가 "극장에서 아주 괜찮은 그림 모델감을 봤다"고 했을 때, 솔직히 조금의 기대도 없었다..

이미지의 힘[이은화의 미술시간]〈183〉

동아일보  2021. 10. 7. 03:03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의 관심과 지지로 사는 사람들은 이미지 관리가 더 중요하다. 16세기 영국 왕 헨리 8세도 이미지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17세기에 소실됐는데도, 이 초상화는 가장 유명한 영국 군주의 이미지로 여전히 각인돼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한스 홀바인은 독일 태생이지만 영국의 궁정 화가로 일하며 기념비적인 초상화를 많이 제작했다. 화이트홀 궁전 내에 있었던 이 그림은 헨리 8세가 아들 에드워드의 출생을 축하하기 위해 의뢰한 것으로 추정된다. 헨리 8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강력한 군주였다. 왕비를 다섯 번이나 갈아 치운 여성 편력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38] 전쟁과 생선

조선일보  2024. 7. 1. 23:50 밤낚시다. 흰 거품과 함께 파도가 밀려오는 어두운 바닷가 둔덕에 고기 예닐곱 마리를 잡아 쌓아뒀다. 탱탱한 몸통과 반짝이는 은빛 비늘, 선홍색 뚜렷한 아가미, 물기를 머금은 맑은 눈알은 신선한 생선의 필수 요건이니, 누군가는 머지않아 맛있는 도미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 속 생선들과 눈을 맞추다 보면 딱히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불과 한두 시간 전에 바닷속을 자유롭게 누비며 파도를 따라 유영했을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낚시에 걸려 뭍으로 던져진 뒤 영문을 모르고 숨을 할딱이다 죽어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색이 묻어날 듯 선명한 눈알에서 체념한 물고기의 마지막 한숨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감정이입일까. 스페인 미술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

‘흰수염’ 노인 죽자 온동네 펑펑 울었다…“형님, 스승님, 교주님!” 누군가했더니[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카미유 피사로 편]

헤럴드경제  2024. 6. 29. 00:11 [작품편 110. 카미유 피사로] 흰 서리 빨래를 너는 여인 겨울 아침 몽마르트의 거리 "살롱전(展) 심사위원들 말이오. 그놈이 그놈인 그림만 뽑는 행태가 점점 심해지고 있소."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 인근의 카페 게르부아(Cafe Guerbois). 예술가 무리가 잔을 쥔 채 불만을 토로했다. 클로드 모네와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젊은 화가는 에두아르 마네를 중심으로 모였다.에드가 드가와 몇몇 예술가는 이들과 살짝 떨어진 채 이따금 고개를 내밀었다. 카미유 피사로. 까끌한 회색 수염을 길게 기른 화가가 정적을 깼다. "나는 우리가 살롱전에 맞서 완전히 새로운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오. 필요하면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이오." 그가 작심하고 한 말..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37] 젊은 순교자

조선일보  2024. 6. 24. 23:56 1839년 다게레오타이프 사진을 처음 본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1797~1856)는 ‘오늘 회화는 죽었다’고 탄식했다. 들라로슈는 역사적 사건을 마치 ‘사진처럼’ 정확하게 그리면서 인물의 내밀한 감정까지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탁월했다.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고 붓 자국 없이 완벽하게 매끄러운 화면을 위해 훈련을 거듭하며 고된 시간을 보냈던 들라로슈의 입장에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포착하는 사진기의 등장은 사실 회화가 아니라 화가의 죽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사진기는 살아 있는 이의 모습을 담을 뿐, 이미 죽어 화가의 마음속에만 있는 얼굴을 보여주는 건 회화뿐이다. 사진이 개발되고 근 200년이 된 지금도 회화가..

동생과 바람핀 남편과 또…‘강박적 사랑’이 만든 400억대 작품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6. 23. 00:06 ‘멕시코 국보’ 프리다 칼로 경매서 413억원 낙찰…라틴 작품 최고가 삶의 고난, 예술적 천재성으로 발현 “디에고는 나의 뮤즈”…한눈 팔아도 재결합[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한 작품이 명성을 얻게 되는 데는 작품성을 넘어선 그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안목이 뛰어난 컬렉터나 큐레이터의 손을 거치는 것은 물론 스캔들, 법적 분쟁, 도난 사건, 심지어 예술계를 뒤흔든 저항까지…. 작품의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이처럼 다양합니다. 그리고 평판 높은 이런 미술품들은 단 0.1초 차이로 행방이 갈라지게 되죠.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나뉘는 치열한 미술시장에서 선택받은 그림들, 그 안에 얽힌 속사정을 ..

파리에서 성공한, 지독히 외로웠던 집념의 한국인

조선일보  2024. 6. 22. 00:40 [아무튼, 주말]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 서양식으로 동양 정신 그려낸 ‘문자추상’의 거장 화가 남관 “이제 와서 외국에 나오면 무슨 수가 생기겠니. 예술이 또한 무어 대단한 거겠니. 나도 모를 일이다. 그저 가슴에 무슨 원한 같은 게 맺혀 있을 뿐이다. 뭐니 뭐니 해도, 끼니를 거르고 죽을 먹더라도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 화가 김환기가 뉴욕에 있을 때, 고국의 딸에게 보낸 편지다. 그가 한국 미술로 승부를 걸어 보겠다고 파리와 뉴욕에 가 있는 동안, 한국에는 노모와 어린 세 딸이 있었다. 자책의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괴로움 속에서도 외국에서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이 세대 예술가들. 우리 역사와 문화가 무시받고 짓밟힌 시대를 경..

벌거벗은 女, ‘야수 득실’ 정글 한복판에 어쩌다…‘영감님’의 남다른 구상[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헤럴드경제  2024. 6. 15. 00:11 [작품편 108. 앙리 루소] 마흔아홉에 전업 화가된 남자 “그림 배꼽 빠진다” 바보 취급 “나는 현대적 스타일서 최고” 잠자는 집시, 전쟁, 꿈 늦깎이 ‘괴짜’ 화가의 탄생 루소는 나이가 마흔 줄이 닿고서야 회화계에 뛰어든 예술가였다. 늦깎이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가 서른 살쯤, 폴 고갱이 서른다섯 살께 전업 화가가 된 사례와 견줘봐도 압도적으로 늦은 것이었다. 그에게 별난 점은 더 있었다. 평생 제대로 된 그림 교육을 받은 적도, 늦게나마 받을 뜻도 없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돈이 차고 넘치는 부자였는가. 좋은 가문과 든든한 뒷배를 두고 있었는가. 이 또한 아니었다. 그런 그가 괴짜 기질을 보이며 전통과 유행 중 어디도 따르지 않은 채 그림을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