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72

광장 공포증을 앓는 뭉크가 본 세상 [으른들의 미술사]

서울신문  2024. 6. 13. 08:02 카를 요한 거리는 노르웨이 왕궁에서 중앙역에 이르는 1㎞ 남짓한 거리다. 거리 주변에 시청, 국회의사당, 상점, 레스토랑이 있어 늘 북적인다.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관공서 건물과 상점으로 카를 요한 거리는 19세기나 지금이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한 거리다.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에 나오는 사람들의 옷차림으로 봐서 초겨울이다. 북유럽의 겨울은 유난히 길다. 해가 늦게 뜨고 오후 3~4시 경이면 벌써 어둡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모두 ‘절규’에서 본 것과 같다. 표정 없는 사람들 한 무리와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어가는 한 남자가 있다. 학자들은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된 이 남성을 뭉크 자신으로 본다.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뭉크는 광장공포, 폐쇄공포, 대인 기..

“21살 연하男과 결혼” 인기 모델女의 ‘깜놀’ 스캔들…이유있는 파격행보[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수잔 발라동 편]

헤럴드경제  2024. 6. 8. 00:11 [작품편 107. 수잔 발라동] 모델에서 화가로 자화상 아담과 이브 푸른 방 "어이, 딴생각은 그만하지 그래?" 쉰일곱 살의 노화가 퓌비 드 샤반이 열여섯 살 소녀 수잔 발라동에게 핀잔을 줬다. "내가 그리는 걸 왜 자꾸 흘깃 보고 그러는가? 모델이면 포즈를 잡는 데 더 신경을 쏟으면 좋겠군." "아…. 네! 그럴게요." 발라동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무너진 자세를 잡기 위해 턱을 다시 들었다. 그런 발라동은 또 얼마 안 돼 시선을 샤반 쪽에 두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샤반을 보지 않았다.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었다. 아하, 구도는 저렇게 잡고 명암은 저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그녀가 머릿속으로 또 생각하는 순간… "어이!" 샤반이 발라동에게 대고..

[김인혜의 방방곡곡 미술기행] 심심한 고향 청주 닮은 심심한 미학의 단색화

중앙일보  2024. 6. 7. 00:47 단색화 거장 윤형근과 청주 “예술은 심심한 것” 특유의 지론 잘난 체 않는 듬직한 미감 추구 죽은 지 수백 년 된 전나무에 충격 “나도, 그림도 대수롭지 않아” 각성 대학 졸업에 10년, 쉰에 활동 시작 묵은 발효음식 같은 작품 쏟아내 한국 단색화의 거장으로 윤형근(1928~2007)이라는 화가가 있다. 그는 1991년 미국 미니멀아트의 거장 도널드 저드(1928~1994)를 서울에서 만났는데, 이때 이들의 대화가 재미있어 신문에 소개한 적이 있다. 저드가 물었다.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윤형근이 한참 뜸을 들이다가 느릿한 충청도 말투로 대답했다. “예술은 심심한 거여.” 배석했던 통역자가 ‘심심하다’는 말을 저드에게 설명하느라 고전했다. ‘심심하다’..

불법 체류자였는데…‘3000억원대 몸값’ 화가로 인생역전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5. 26. 00:00 ⑨ 윌렘 드 쿠닝 불법 체류 20대 청년, 뒤늦게 화가의 길 '인터체인지' 3699억원에 판매…세계 최고가 추상화 추상과 구상을 동시에…美 추상표현주의 탄생 3월 아트바젤 홍콩·4월 베니스 비엔날레서도 명성 공고히 [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한 작품이 명성을 얻게 되는 데는 작품성을 넘어선 그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안목이 뛰어난 컬렉터나 큐레이터의 손을 거치는 것은 물론 스캔들, 법적 분쟁, 도난 사건, 심지어 예술계를 뒤흔든 저항까지…. 작품의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이처럼 다양합니다. 그리고 평판 높은 이런 미술품들은 단 0.1초 차이로 행방이 갈라지게 되죠.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

“자, 입을 벌려요” 인형같은 소녀들 입안 쏙쏙…뭘 그리 맛있게 먹어요?[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장 프랑수아 밀레 편]

헤럴드경제  2024. 5. 25. 00:12 [작품편 105. 장 프랑수아 밀레] 시골 여러 풍경 그린 농부들의 ‘라파엘로’ 이삭 줍는 여인들 키질하는 농부 만종 허름한 차림의 여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들 모두 추수를 마친 들판 한 공간에 남겨진 이삭을 줍고 있었다. 한 알, 두 알….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낟알을 털고, 쥐고, 모았다. 알맹이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모습이었으나, 종일 그렇게 나서봐야 고작 몇 줌이었다. 그래도 이들은 결과에 만족하는 듯보였다. 이런 양으로는 빵 한 덩어리어치 밀도 못 얻을 게 분명했지만, 실망의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오늘을 힘껏 살았으면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1857년, 프랑스 바르비종의 정취에 젖은 장 프..

“홧김에 사람을 죽였어요” 살인자된 천재청년 탈주…그럴 줄 알았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헤럴드경제  2024. 5. 18. 00:12 [작품편 104. 카라바조] 카드놀이 사기꾼 성모의 죽음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사람을 죽여버렸다 "저리 비켜!" 1606년, 로마의 한 테니스 시합장. 칼을 든 사내가 사람들을 거칠게 밀쳤다. 그는 싸움 소리를 듣고 몰린 이들을 향해 위협적인 손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이 자식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씩씩대는 그는 벽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는 상대를 향해 도발했다.....주변에는 연못이 생기는 듯 무언가 고이고 있었다. 그것은 상대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빨간 액체였다. …내가 사람을 죽인 거야?사내는 이제야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변에는 연못이 생기는 듯 무언가 고이고 있었다. 그것은 상대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빨간 액체였다. …내가..

법학도 때려치고 쓱쓱 …피카소가 대놓고 질투한 라이벌로 우뚝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5. 11. 00:11 ⑧ 앙리 마티스  생 로랑 소장 ‘노란꽃…’ 692억 낙찰 정규 교육 못받아도 ‘야수파 거장’ 인정 거트루드·피카소 등 작품 가치 알아봐 패션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그 이름,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1936~2008). 한국에서는 줄여서 ‘입생로랑’으로 알려진 명품 브랜드 창립자인 그가 유명을 달리하고 만 이듬해,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참여할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가진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이브 생 로랑의 소장품 경매였죠. 경매가 진행된 당시 2009년은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만큼은 불황도 비켜간 ‘세기의 경매’가 이뤄진 건데요. 낙찰 총..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30] 라비니아 폰타나와 자녀들

조선일보  2024. 5. 7. 00:09 당대 이탈리아 최고의 화가였던 라비니아 폰타나(Lavinia Fontana·1552~1614)가 그린 로마 귀부인 비앙카 마셀리와 자녀들이다. 이들의 호화로운 차림새뿐 아니라 폰타나에게 초상화를 주문했다는 걸 봐도 이 집안의 부를 짐작할 수 있지만, 21세기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다자녀만으로도 이미 부자 인증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상상도 못하던 시절에 폰타나는 볼로냐 최고 화가의 딸이었던 덕에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딸의 천부적 소질을 일찍 알아본 부친은 제자와 폰타나를 맺어주며 결혼 후에도 부부가 친정에 살면서, 남편이 아내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폰타나 앞으로 귀족들이 줄을 서서 초상화를 주문했고, 폰타나는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