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72

미완성의 이유[이은화의 미술시간]〈306〉

동아일보 2024. 2. 14. 23:30 길버트 스튜어트는 19세기 미국 최고의 초상화가였다. 미국 첫 대통령 6인을 포함해 약 1000명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런데 그 많은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건 ‘아테네움’(1796년·사진)이라 불리는 미완성 초상화다. 어째서 미완성 그림이 그의 대표작이 될 수 있었을까? 1794년 정치인 존 제이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성공한 후, 그의 소개로 이듬해 말 드디어 대통령이 스튜어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림 속 워싱턴은 64세로 타계하기 3년 전 모습이다. 집권 8년 차에 들어선 대통령은 전쟁 영웅도 권력자의 모습도 아니다. 스튜어트는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미완성 원본을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 아테네움이란 제목은 그의 사후 그림이 보스턴 아테네움 미술관으로..

[K스토리] 영상으로 만나는 '미술로 보는 세상' ⑦ 신윤복의 에로티시즘과 엿보기

연합뉴스 2024. 2. 11. 22:24 "조선 후기 대표적 화가인 신윤복(申潤福)은 늘 금기에 도전하는 혁신적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시대 제도권 안에서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화가는, 그것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린 화가는 신윤복이 유일합니다." '미술로 보는 세상' 칼럼 저자 연합뉴스 도광환 기자는 신윤복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도 기자는 이어 "신윤복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단오풍정'은 단옷날 계곡에서 여성들이 목욕하거나 머리를 만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며 "은밀한 모습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린 그림은 없다"고 말했다. 도 기자에 따르면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림의 왼쪽 상단 나무 아래를 보면 동자승 혹은 청년 스님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성이 계곡을 훔쳐보고 있는 장면이 있다. 더욱..

1분에 100억씩 값오른 ‘최고가 누드화’…위작 많아서라고?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2. 11. 00:01 수정 2024. 2. 11. 01:31 ②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누워있는 나부’ 1920년 1월, 누추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 파리의 한 자선병원. 살아 생전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가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살을 에는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낡디낡은 작업실에서 이웃의 발견으로 병원에 옮겨진 지 불과 이틀 만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술과 마약에 찌든 채 피를 토하며,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의 연인은 만삭의 몸으로 창밖으로 투신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95년 뒤, 믿을 수 없는 반전이 벌어집니다. 가난한 화가가 죽기 2년 전에 그린 그림이 세상에서 가장..

‘초호화 휴양지’ 화산폭발, 2000명 파묻혀 죽었다…그 시절 폼페이서 무슨 일이[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카를 브률로프 편]

헤럴드경제 2024. 2. 10. 00:22 [작품편 : 91. 카를 브률로프] 폼페이 최후의 날 이탈리아의 아침 자화상 서기 79년, 8월24일. 찬란한 도시가 통째로 화산재에 파묻혔다. 폼페이 사람들은 때마침 불의 신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모두가 포룸(forum·광장) 일대에 모여 웃고, 떠들고, 노래를 불렀다. 휴양차 이곳에 온 로마 귀족들은 스타비안 목욕탕(Stabian baths)에서 따뜻하게 몸을 녹였다. 아이들은 연극과 검투사 경기를 훔쳐보기 위해 난전 일대를 쏘다녔다. 베수비오 화산이 뿜는 김은 확실히 심상치 않았다. 땅울림 뒤 잔기침하듯 거듭 움찔하던 화산 봉우리는 끝내 모든 걸 토해내듯 검은 연기를 뿜기 시작했다..... 화산은 끝내 화약 수백..

혼례 올린 신부, 설빔 입은 아이…조선을 사랑한 英여성화가

중앙일보 2024. 2. 9. 05:00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엔 '송영달 개인 문고'가 있다. 미국에서 행정학 교수로 이스트캐롤라이나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던 송영달(90) 교수가 기증한 한국 관련 서양 고서(古書) 모음이다. 송 교수는 틈날 때마다 영미권 서점을 다니며 구한말 한반도의 모습이 서술된 영어 서적을 수집했다. 40여 년에 걸친 수집 과정에서 송 교수가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인물이 있으니,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라는 영국 화가다. 20세기 초 처음엔 일본에, 다음엔 당시 조선을 방문해 작품활동을 했던 여성 화가다. 그는 20세기 한반도를 금강산부터 한양까지 여행하며 우리네 삶을 화폭에 담아냈다. 조선의 3ㆍ1 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크리스마스 실을 세 차례 그린..

바보처럼 웃다 보면[이은화의 미술시간]〈305〉

동아일보 2024. 2. 7. 23:30 당나귀 귀가 달린 후드 상의를 입은 남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왼손은 얼굴 반쪽을 가렸고, 오른손은 안경을 들었다. 왼팔로는 얼굴 형상이 달린 지팡이를 안았다. 옷은 겨자색과 붉은색의 이중 색이고 머리에 쓴 후드 중앙에는 공룡처럼 돌기가 달렸다. 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의 남자는 누구고 그는 왜 이리 웃고 있는 걸까? 이 그림의 제목은 ‘웃는 바보’(1500년경·사진), 서명은 없지만 15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화가 야코프 코르넬리스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만 보면 지능이 떨어지는 사내를 그린 것 같지만 차림새는 광대 복장이다.....가장 눈길을 끄는 건 얼굴을 가린 손과 그의 웃음이다......네덜란드 속담에서 ‘손가락 사이로 본다’는..

7만원짜리 그림 5000억 찍은 ‘역대급’ 사연…위작 논란은 ‘현재진행형’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2. 4. 00:02 수정 2024. 2. 4. 00:26 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살바토르 문디’ 지구상에서 가장 값비싼 이 작품의 이름은 바로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 라틴어로 세상의 구세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림 속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인데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 다빈치가 1500년경에 완성한 그림입니다. 다빈치가 50~60대에 그린 작품으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를 이끌던 시기에 제작된 것입니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듯하면서도 동요시키는 듯한 신비로운 눈빛, 입가에 머금은 희미한 미소, 구불구불하고 윤기가 흐르는 곱슬머리, 다빈치가 만든 특징적인 기법인 스푸마토 연출(윤곽을 희미하고 뿌옇게 그리는 명암법)까지. ..

“죽은 아내 앞서 뭐하는 짓이야!” 호통에도…남편이 고집한 행동은[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헤럴드경제 2024. 2. 3. 00:21 [작품편 : 90.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은 카미유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인 양산을 든 여인 죽은 아내를 그리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다. 그간 가쁜 숨을 내쉰 듯 입은 살짝 벌어져 있다. 열이 심했는지 얼굴은 수건으로 꽁꽁 싸매고 있다. 흰 천 위 올려진 몸은 뻣뻣한 고목 내지 단단한 화석 같다. 가슴팍에는 희고 빨간 무언가가 놓여있다. 애도를 위한 꽃 뭉치다. 그렇다. 이 여성은 막 숨을 거뒀다. 길고 깊은 밤을 견딘 그녀는 끝내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879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1847~1879)였다. 고작 서른두 살, 사인은 자궁암이었다. 한 사내가 그런 그녀 옆에서 그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