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72

[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68.영화 ‘마농의 샘’을 보고 그린 그림

강원도민일보 2024. 1. 5. 00:05 미풍에 라벤더향 흩날리는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땅’ 농군이 가장인 마농네 세 식구…뜨네기 신세 팍팍한 마을 인심 궂은 날 연속 위골랭 넋 빼앗은 열여덟살 마농…여름날 구름 바뀌듯 마음밭 요동치다 엇갈린 운명 프랑스 남동부 식은 바람 부는 옅은 청보랏빛 산등성 허위허위 오르는 당나귀와 세 사람 그래도 파리보다 소박한 자연·따스한 라이프 스타일 가진 우아한 프로방스 사람들이 좋았다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파페삼촌의 운명을 갈랐다. 영화 후편의 끝에 쟝이 바로 자신의 친아들임을 알게 된다. 아둔패기였음을 뒤늦게 후회하면 무엇하겠는가. 인생은 한 번 흘러간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그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가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

새로운 시작[이은화의 미술시간]〈300〉

동아일보 2024. 1. 3. 23:33 해돋이는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상징한다. 한데 클로드 모네는 해돋이를 묘사한 그림을 전시에 출품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제목도 ‘인상, 해돋이(1872년·사진)’였지만, 그림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비평가들은 혹평을 퍼부었다. 왜였을까? 모네는 이 그림을 1872년 고향 르아브르를 방문했을 때 그렸다. 해 뜰 무렵 호텔 방에서 내려다본 항구의 모습으로, 빛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풍경을 재빠른 붓놀림으로 표현했다. 그림의 초점은 노 젓는 사람이 탄 두 척의 작은 배와 바다 위로 떠오른 붉은 태양에 맞춰져 있다. 뒤에는 돛대를 단 범선들과 증기선 굴뚝들이 보이지만,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처리돼 형태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신문에 기고한 전시..

“제가 봤어요” 女납치 순간 밀고했다가…이렇게까지 ‘보복’ 당할줄은[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시시포스 편]

헤럴드경제 2023. 12. 30. 00:21 신까지 놀려먹는 꾀 가졌으나 결국은 끝없는 형벌의 늪으로 ‘부조리’에 굴복하길 바라지만 끝내 저항…‘자유의지’ 새겼다 편집자 주 어렵고 헷갈리는, 그럼에도 실생활 곳곳 녹아있어 알아두면 좋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후암동 미술관〉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보듯 감상하세요. 처음부터 정주행하셔도 좋고, 시즌별로 나눠 봐도 좋고, 각 이야기를 단편처럼 읽으셔도 좋습니다. 걸출한 예술가와 풍부한 예술작품으로 몰입을 돕겠습니다. 각 기사는 여러 참고 문헌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끝없는 형벌 시시포스는 바위를 밀었다. 제 몸보다 더 큰 돌덩이를 굴렸다. 그는 저 멀리 산 꼭대기를 향해 움직였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불어오는 흙먼지를..

타인의 불행[이은화의 미술시간]〈299〉

동아일보 2023. 12. 27. 23:30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 나오는 문구다. 잔인한 말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보며 위로받는다. 19세기 덴마크 화가 프란츠 헤닝센은 불행에 처한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헤닝센은 초상화, 풍경화, 장르화, 심지어 동물화에도 능했지만,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건 바로 이 그림 ‘장례식’(1883년·사진)이다. 눈 내린 추운 겨울날,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가족이 묘지로 향하고 있다. 어린 두 남매가 손을 꼭 잡고 앞장서고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노인의 부축을 받으며 뒤따르고 있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하리만큼 희고 몸은 임신한 상태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이 아이들의 아..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11] 산타 할아버지의 비밀

조선일보 2023. 12. 26. 03:02 수정 2023. 12. 26. 06:04 독자들께서는 혹시 주위에 여전히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어린이가 있는지 잘 살피고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란다. 자칫 이 그림이 어린이 눈에 띄면 산타의 비밀이 들통 나기 때문이다. 미국 화가 노먼 록웰(Norman Rockwell·1894~1978)의 그림 속 소년은 별 뜻 없이 안방 침실의 서랍장을 열었다. 소년은 그 안에 늘 들어 있었지만 열어본 적 없던 상자를 한번 열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게 바로 판도라의 상자일 줄이야......산타가 가짜였다는 충격적 진실을 알게 된 소년은 경악과 실망을 금치 못한 채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 그림은 1956년 12월, 전성기를 누리던 미국의 주간 종합 잡지..

“영혼의 짝꿍” 소녀랑 있을수록 생명이 깎였다…섬뜩한 진실 뭔가했더니[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제임스 휘슬러 편]

헤럴드경제 2023. 12. 23. 00:59 ‘연백색’의 비밀 흰색 교향곡 1번 : 흰색 옷을 입은 소녀 흰색 교향곡 2번 : 흰색 옷을 입은 작은 소녀 흰색 교향곡 3번 편집자 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연백색 사랑 그녀의 눈은 크고 맑..

최초의 설경 그림[이은화의 미술시간]〈298〉

동아일보 2023. 12. 20. 23:30 성탄절은 기독교인뿐 아니라 지구촌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즐기는 기념일이다. 이왕이면 눈이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게 된다. 대(大)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베들레헴의 인구조사’(1566년·사진)는 눈 내린 풍경을 묘사한 최초의 그림 중 하나다. 브뤼헐은 성경 이야기를 그가 살던 시대에 빗대 그리는 걸로 유명하다. 이 그림의 배경 역시 성경 속 베들레헴이지만, 실제로는 화가가 살았던 16세기 네덜란드의 일상 풍경이 펼쳐져 있다. 눈이 내린 겨울날 저녁 사람들이 왼쪽의 여관 건물로 모여들고 있다. 로마 황제의 명으로 호적 신고를 위해 고향에 온 사람들이다. 문 앞에서 서기관이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기록하며 세금을 받고 있고, 창을 든 병사가 옆에서 지키고 있..

"완전히 사기잖아"…엄마 내쫓고 딱 하나 남긴 물건의 정체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한국경제 2023. 12. 16. 11:55 수정 2023. 12. 16. 18:41 평화를 사랑한 천재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화가 외교관'으로 뛴 그와 프랑스 왕가의 이야기 “이거, 완전히 사기잖아.”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왕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왕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기 천사들이 가져다준 어머니의 초상화를 보고 첫눈에 반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돈 때문에 어머니와 결혼했을 뿐, 어머니를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어머니 역시 걸핏하면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를 혐오했습니다. 그런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어서였는지, 왕과 어머니의 사이도 마찬가지로 최악이었습니다. 둘은 권력을 놓고 치열하게 다퉜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