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73

“씨앗은 짓이겨져선 안 된다” - 전쟁과 노인 작가 [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

한국일보 2023. 11. 23. 04:31 칼레드 후라니, 블라디미르 옵치니코프, 케테 콜비츠 언젠가부터 수박은 정치적 과일이 됐다. 우리나라가 아닌 팔레스타인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구성하는 빨강, 초록, 검정, 흰색 대신 등장한 수박은 이스라엘의 탄압과 검열에 저항하는 상징이다.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실효 지배하는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박 그림이 쏟아지고 있다. 저항의 의미로 수박이 처음 등장한 것은 40년 전 한 이스라엘 군인의 말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의 피카소’라 불리는 슬리만 만수르(Sliman Mansour)의 1980년 사건에서 출발한다. 당시 이스라엘 측은 만수르의 ..

싸우고 도전했던 여성들[이은화의 미술시간]〈293〉

동아일보 2023. 11. 15. 23:30 백발의 화가가 이젤 앞에 앉아 있다. 한 손엔 스케치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다른 손엔 연필을 쥔 채 몸을 돌려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림 속 여성은 대체 누굴까? 이 그림은 미국 화가 애나 클럼키가 그린 ‘로자 보뇌르의 초상’(1898년·사진)이다. 보뇌르는 19세기 프랑스에서 동물 화가로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화가다. 클럼키는 21세가 되던 1880년 파리로 와서 8년간 미술 공부를 한 후 보스턴에서 초상화가로 활동했다. 10년 후, 그는 다시 파리로 왔다. 어릴 때부터 흠모하고 존경했던 보뇌르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였다. 보뇌르는 겨우 27세 때 밭갈이하는 황소들을 그린 ‘니베르네에서의 밭갈이’로..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05] 클로드 모네와 레옹 모네

조선일보 2023. 11. 14. 03:03 1840년 11월 14일, ‘인상주의의 아버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 레옹 모네는 클로드의 네 살 위 형님이다. 촌수를 따지면 ‘인상주의의 큰아버지’인 셈이다. 1874년, 처음으로 클로드가 ‘해돋이: 인상’이라는 작품을 전시했을 때도 그는 온갖 조롱과 멸시만을 받았다. 그다음 해 여전히 가난한 무명 화가인 채로 클로드가 파리의 예술 경매에 작품을 내놨는데, 구매자 한 사람이 유독 열정적으로 값을 올려 작품을 구입했다. 레옹 모네였다. 레옹은 그 뒤로도 동생뿐 아니라 똑같이 가난하고 대책 없는 그 친구들,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의 작품을 수시로 구입했다. 그러니 그를 진짜 ‘인상주의..

[K스토리] 영상으로 만나는 '미술로 보는 세상' ⑤ 사진의 등장이 일으킨 나비효과?

연합뉴스 2023. 11. 13. 00:31 ※ 편집자 주 '미술로 보는 세상'은 미술 작품을 통해 당시 화가가 살아갔던 시대상과 현재 세상 곳곳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재물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팀은 기존 연재물을 영상으로 확장한 크로스 미디어형 지식 콘텐츠인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미술 이미지는 영화, 광고 등을 넘어서 메타버스와 가상 및 증강현실까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K컬처팀은 미술 이미지를 통해 생각의 탄생과 사유의 확장을 표방하는 지식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노석준(전 고려대 외래교수) RPA 건축연구소 소장과 석수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영상예술학 박사)의 도움으로 제작합니다. "1836년 프랑스의 루이 다게르가 처음으로 근대 사진술로 촬영에 성..

“지나치게 착할 필요 없어…” 그 여성들에게 속삭인다

한겨레 2023. 11. 11. 10:05 수정 2023. 11. 11. 12:00 [한겨레S]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잇기ㅣ그림 속 여성 이인성 ‘노란 옷을 입은 여인’…정수정 ‘뿔 Horn’ 신여성이었던 화가의 아내와 현대를 사는 여성들 “스스로를 검열하지 말아라. 너 자신을 그리하지 않아도 너희는 지나치게 착한 아이다.”(2003년 진덕규 이화여대 교수)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여성이 이 사회를 살아가기 쉽지 않음에 대한 조언이다. 그 말이 이해되기까지 졸업 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슬프게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바다. 20세기 초의 조선과 2023년 여성의 표상은 어떠할까. 근대의 구상화가 이인성과 동시대 작가 정수정의 작품 속 여성에게 말을 걸어본다. ‘또각또각’ 소리가 들릴 ..

“이리 올래?” 나체女가 급히 감춘 ‘특별한’ 신체부위…섬뜩한 실체는[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존 콜리어 편]

헤럴드경제 2023. 11. 11. 00:21 육지의 아이 물의 요정 릴리트 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콜리어는 안정적인 초상화가의 길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라파엘전파의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182..

부도덕한 결혼의 끝[이은화의 미술시간]〈291〉

동아일보 2023. 11. 1. 23:39 막장 드라마 같은 결혼 이야기는 동서고금 어디에나 존재한다.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는 당대 상류층의 결혼 세태를 풍자한 ‘유행하는 결혼’ 연작을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둘만의 밀담(1743년·사진)’은 총 여섯 점으로 구성된 연작 중 두 번째 그림이다. 남자는 사치와 무분별한 투자로 몰락 직전에 내몰린 귀족의 아들이다. 여자는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돈만 많은 상인의 딸이다. 여자는 막대한 결혼 지참금 덕에 귀족 신분을 얻었고, 남자 집안은 그 덕에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마디로 서로의 필요에 의한 정략결혼이었다. 부부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화가는 이어지는 그림에서 부도덕한 정략결혼의 끝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술로 보는 세상] 비 내리는 일상, 나를 찾는 시간

연합뉴스 2023. 10. 28. 09:00 비 내리는 가을은 다소 쓸쓸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비에 젖어 떨어지는 낙엽 탓이기도 하고, 비 내린 뒤 다가올 쌀쌀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봄비가 '도약'이라면, 가을비는 '우수'다. 러시아 화가 알렉산드르 브누아(1870~1960)가 그린 '바젤 강변의 비'(1896)는 스산한 가을에 대한 징표 같다. 강변 나무는 잎을 모두 떨어뜨렸다. 그 아래 지나는 한 여인, 제대로 차려입은 옷차림이지만, 비바람에 곧은 자세를 잡기 쉽지 않다.남자는 더 조심스럽다. 잔뜩 웅크려 걷는 모습이 이미 많은 비를 맞은 듯하다. 우산은 곧 뒤집어질 것처럼 보인다.검정 개 한 마리만이 거센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걷고 있다. '일상'이란 흔하다는 뜻이다. 흔한 일에서 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