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73

“죽은 아내 앞서 뭐하는 짓이야!” 호통에도…남편이 고집한 행동은[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헤럴드경제 2024. 2. 3. 00:21 [작품편 : 90.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은 카미유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인 양산을 든 여인 죽은 아내를 그리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다. 그간 가쁜 숨을 내쉰 듯 입은 살짝 벌어져 있다. 열이 심했는지 얼굴은 수건으로 꽁꽁 싸매고 있다. 흰 천 위 올려진 몸은 뻣뻣한 고목 내지 단단한 화석 같다. 가슴팍에는 희고 빨간 무언가가 놓여있다. 애도를 위한 꽃 뭉치다. 그렇다. 이 여성은 막 숨을 거뒀다. 길고 깊은 밤을 견딘 그녀는 끝내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879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1847~1879)였다. 고작 서른두 살, 사인은 자궁암이었다. 한 사내가 그런 그녀 옆에서 그림을..

“벌거벗은 이 여인은 왜 이토록 슬픈가”…그도, 그녀도 불행한 사람이었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헤럴드경제 2024. 1. 27. 00:21 빈센트 반 고흐 영원의 문 앞에 선 화가 슬픔 울고 있는 노인 별이 빛나는 밤 "당신을…. 조, 좋아해요." 저질러버렸다. 끝내 말하고 말았다. 1873년 어느 날, 스무 살의 빈센트 반 고흐는 그렇게 외제니 로예에게 고백했다. 곧 호감을 표할 생각이긴 했지만, 이처럼 뜬금없이 일을 벌일 계획은 없었다. 로예는 고흐의 영국 하숙집 주인 딸이었다. 도도한 인상의 열아홉살 소녀였다. 고흐는 그런 성숙한 분위기의 로예에게 오래전부터 연심을 품었다. 사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 고흐가 일을 저지른 후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고흐는 이 정적이 차츰 두려워졌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빈센트. 미안해..

[김인혜의 미술로 한걸음] 이 그림들을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중앙일보 2024. 1. 26. 00:32 전통과 현대 사이의 근대 부재 동시대를 좇아가기 바빴던 역사 누락된 역사 재건은 국가 책무 국립근대미술관 설립 검토해야 최근 『살롱 드 경성』이라는 책을 냈다. 서울이 ‘경성’으로 불리던 일제강점기에도 ‘살롱’이라 할 만한 예술가 집단이 건재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에서부터 오지호, 이인성, 이쾌대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화가들까지 총 30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책의 독자 후기에 이런 반응이 많다. “반 고흐나 모네 같은 외국 작가는 알면서, 왜 나는 이런 훌륭한 한국 화가들을 이제야 알았나.” 또 독자들은 묻는다. “이 그림들을 어디 가면 볼 수 있나?” 책의 도판 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꽤 많다는 사..

경청의 힘[이은화의 미술시간]〈303〉

동아일보 2024. 1. 24. 23:30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좋은 관계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인상주의 화가 윌리엄 체이스가 그린 ‘친절한 방문(1895년·사진)’은 좋은 대화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하다. 따뜻한 빛이 들어오는 실내, 잘 차려입은 두 여인이 소파에 앉아 마주 보며 대화하고 있다. 그림 속 배경은 체이스가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던 롱아일랜드의 작업실이고, 모델은 그의 아내 앨리스와 방문객이다. 손님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손에 분홍 양산을 들었다. 머리에는 꽃장식이 달린 모자와 얼굴 전체를 가리는 얇은 베일을 썼다. 긴 소파에 앉은 그녀는 몸과 머리를 앨리스에게 향하며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노란 ..

눈시울 붉어진 국민들…‘영국의 이순신’ 구해낸 전함의 눈물겨운 최후[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윌리엄 터너 편]

헤럴드경제 2024. 1. 20. 00:21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눈 폭풍,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 눈보라 편집자 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유럽 대륙을 손에 쥔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제 바다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

‘소 머리-사람 몸뚱이’ 아기 태어났다…‘폭풍성장’ 거듭, 끝내 최후는[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테세우스 완결편]

헤럴드경제 2024. 1. 13. 00:21 미노타우로스 제물 자처 미궁 탈출하고 영웅추앙 이후 계속되는 내리막길 해안절벽서 허무한 최후 조지 프레데릭 왓츠 베네데토 제나리 2세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지난 이야기〉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인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모험길에 올랐다. 바다 아닌 산길을 택한 그는 아테네로 가는 길에 온갖 잔혹한 악당을 소탕한다. 끝내 아테네 땅을 밟은 테세우스는 마녀 메데이아의 계략도 물리친 뒤 아버지와 손을 잡는다. 하지만, 때마침 아테네에게는 크레타섬과 맺은 치욕스러운 '약속의 9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기괴한 존재 그간 여러 괴물을 봤지만, 이렇게까지 기괴한 녀석은 처음이었다. 목 위로 달린 건 분명 황소 머리였다. 목 아래 붙어있는 건 인간의 근육질..

행운을 부른 초상화[이은화의 미술시간]〈301〉

동아일보 2024. 1. 10. 23:30 한겨울 얼음판 위에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차림새로 보아 귀족이나 상류층으로 보인다. 18세기 후반, 스케이트 타는 상류층 남자의 초상화는 상당히 이례적인 주제였다. 게다가 화가는 27세의 화가 견습생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을까? ‘스케이트 타는 사람’(1782년·사진)은 미국의 유명 초상화가 길버트 스튜어트의 초기 대표작이다. 스튜어트는 20세 때 영국 런던으로 가 벤저민 웨스트 화실의 견습생이 되었다. 이 초상화는 가난한 견습생이었던 그에게 첫 명성을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5년간의 도제 생활도 끝내게 해줬다. 모델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고 부유한 변호사 윌리엄 그랜트다. 그림 속 그랜트는 팔짱을 낀 채 스케이트를 타..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13] 우유를 따르는 여인

조선일보 2024. 1. 9. 03:01 볕이 잘 드는 창 앞에 서서 여인이 우유를 따른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흰 우유가 어찌나 진하고 부드러워 뵈는지 풍부한 그 맛이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 거친 도기 그릇, 손잡이가 반들반들 길이 든 바구니와 파삭한 빵에서부터 묵직한 청색 앞치마, 힘주어 주전자를 받쳐 든 여인의 흰 팔뚝, 몸에 꼭 맞게 바느질한 노란 상의, 빳빳하게 풀을 먹인 흰 두건, 군데군데 못 자국이 난 오래된 회벽까지, 시선을 위로 천천히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시공간을 이동해 17세기 네덜란드의 소박한 부엌에 와있다. 지난해 이 그림을 직접 보는 안복(眼福)을 누린 이들이 113국의 65만명이다. 16주간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