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12. 16. 23:51 ‘보따리를 싼다’는 말은 하던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떠난다는 뜻이다. 그곳이 어디든 머물던 데서 완전히 떠나려면 아쉽고 서글프다. 어린 시절, 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한 미술가 김수자(1957~)는 보따리를 싸고 푸는 일에 익숙했지만, 여러 번 했다고 해서 떠나는 일이 수월해지는 건 아니다. 1997년, 김수자는 보따리 수백 개를 트럭에 싣고 그 위에 올라타, 유랑하듯 머물다 떠났던 전국 방방곡곡을 11일 동안 달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불을 펼쳐두면 안락한 잠자리가 되지만, 그 이불보에 물건을 챙겨 묶으면 이별을 앞둔 보따리가 됐다. 보따리 안에는 한 사람의 아침에서 밤까지, 탄생에서 죽음까지, 사랑에서 이별까지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김수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