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2024. 11. 3. 19:18
황정수 미술평론가
올해는 채색화의 선구자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화백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술계가 힘을 합쳐 회고전이라도 준비해야할 기념비적인 해이지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고흥군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지만 한국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모습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천경자의 말년을 괴롭게 했던 미인도 위작 사건과 작품세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탓이 크다. 작가의 가슴에 큰 상처를 준 위작 사건은 결국 화가를 화단에서 모습을 감추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작품 감정에 불성실하고 불분명한 결론을 내린 한국화단은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천경자는 여성화가 불모시대였던 근대기에 일본에 유학해 본격적으로 채색화에 대해 연구하고 돌아온 선구자였다.....귀국해서 대학에 자리 잡은 그는 채색화의 보급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오히려 ‘왜색 미술의 이식’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근대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누명에 가까운 따돌림이었다.
인물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1977년에 그린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1978년 개인전 당시 도록의 표지로 쓰일 만큼 작가 자신도 애정을 가진 작품이다. 담담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의 한 여인이 가슴에 꽃을 들고 머리에 화관의 모습을 한 꽃뱀 네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무표정하고 쓸쓸한 작품 속 두 눈은 식민지 국민, 왜색화가, 복잡한 여성으로서의 삶, 위작시비 등 굴곡진 삶 끝에 결국 이국 땅에서 세상을 떠나야 했던 천경자의 한 많은 생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화가 천경자의 삶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져,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그의 미술세계에 빛이 가득하길 바란다.
https://v.daum.net/v/20241103191854020
[황정수의 그림산책]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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