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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부품업체가 떨고 있다

바람아님 2015. 6. 15. 07:58

(출처-조선일보 2015.06.15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사진
이인열 산업1부 차장

"LPGA(미국여자프로골프)의 낭보 같은 소식 아닌가요." 

얼마 전 만난 중소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3월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제너럴모터스)이 선정한 

'올해의 우수 협력업체' 시상식에서 한국 부품 업체 28곳이 

수상 업체 78곳 가운데 든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수상 업체 중에는 포스코·LG화학 같은 대기업도 있지만 

영화금속·오토젠·우신시스템 등 중견·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올해가 23회째인 이 시상식에서 한국 업체의 비중은 2008년 이후 

늘 20~30%를 넘고 있다. 조니 살다나 GM 글로벌 구매 담당 부사장은 "2008년부터 7년 연속 전 세계 우수 협력 업체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그만큼 한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높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 부품 업체들은 전 세계 골프계를 호령하는 

한국 낭자 군단 못잖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부품 업체들이 그만한 대접을 누리고 있는 걸까. 국산 자동차 메이커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사장 A씨는 기자의 질문에 

"대기업들은 임직원 월급을 좀 깎아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우리 회사를 20년 다닌 부장급이 대기업의 4년 차 대리 월급만도 못하다 보니 

우수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한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을 보세요. 임금을 올려주고 싶어도 도저히 올려줄 

여력이 없습니다."

한국 산업계에서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이다.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간단하지 않다. 

"한국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62%, 100대 기업의 47%에 불과하다. 

특히 제조 중소기업들의 평균 임금은 100대 기업의 39%이다. 1980년대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90% 이상이었고, 1990년대에도 75% 수준이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성장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장하성 교수·2014년 9월 발간 '한국자본주의')

그렇다면 왜 기업 간 임금 양극화가 심해질까. 전직 중소기업 CEO의 분석은 이랬다. 

"유수 대기업의 구매본부장 임기를 보라. 2~3년을 못 간다. 가장 큰 이유는 때가 되면 

사람을 바꿔 납품 기업을 더 쪼는 구조에 있다. 새로 된 사람은 다시 납품 기업을 

닦달한다. 그래야 본인이 산다. 그렇게 2~3년 하다 보면 '마른 수건 쥐어짜기'의 부작용을 우려하게 마련이다. 

그때쯤이면 그 사람도 잘린다. 새로 온 구매본부장은 또 열심히 일한다."

좋은 고객과 좋은 협력 회사가 없는 대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완벽한 기업'이라고까지 하던 일본 자동차 회사 도요타가 2009년 사상 초유 리콜 사태를 맞이한 가장 큰 원인은 비용 절약만 생각하고 부품 업체들을 무한대로 닦달한 

것이었다. 

최근 자동차·전자업계 등에서 실적 부진 소식이 퍼지면서 또다시 부품 업체들이 

벌벌 떨고 있다. 

'한국 부품 업체 만세(萬歲)'가 돼야 '한국 대기업 만세'도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