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5-8-29
통장 잔액이 300만원이 넘으면 열 일 제쳐놓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부부가 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지(34·한국)와 다리오(36·스페인) 부부다. 낡은 중형 카메라 한 대와 유통기한이 15년이나 지난 필름을 들고 이들을 찾았다. 철 지난 필름으로 그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은 예상하지 못한 독특한 느낌의 사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사진 의도를 알아챈 부부는 “우리 같이 모험해봐요”라며 실패할 수 있는 사진작업을 오히려 반겨 주었다.
지와 다리오는 8년 전 인도에서 처음 만났다. 사랑에 빠진 둘은 간신히 굴러가는 봉고차를 구해 세계 각지의 시골을 여행했다. 음식은 자연에서 얻었고 구부러진 나무에 잎을 얹고 모닥불을 피우며 잤다. 한국으로 들어온 둘은 혼인신고를 했고 거처를 제주로 옮겼다. 늘 함께인 이들은 ‘지다리오’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실제로 이 부부는 지난해 다리오가 친구의 초대를 받아 하루 외박한 것 빼고는 떨어져 아침 해를 맞이한 날이 없다며 웃었다.
지는 “다리오는 ‘손이 열린 사람’이에요. 차도 고치고, 목공도 잘하고, 손으로 하는 일은 못하는 게 없기 때문”이라며 은근히 자랑을 한다. 둘은 밀랍을 품은 실로 팔찌, 목걸이를 만들어서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다. 세계여행 중에 사온 옷을 팔 때도 있다. 올해부터는 은과 보석의 원석(原石)을 세공한 반지, 목걸이가 추가됐다. 액세서리를 만드는 두 사람의 손놀림에 군더더기 없는 삶이 녹아 있었다. 두 사람은 필요한 만큼 움직인다. 과함도 부족함도 없다. 지다리오는 이방인이 아니라 땅과 하늘에 어울리는 자연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다리오는 “벌써 이래저래 생긴 신발이 4개나 된다”며 너무 욕심 많은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제주 | 사진·글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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