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하고 게을러지게하는 물건…나라 안에 담배는 모두 없애야"
요즈음 공공건물에 들어서거나 길을 가다 보면 한쪽 구석에 처량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흡연자들이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외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죄를 지은 것
처럼 잔뜩 움츠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몇 년 사이에 세태가 변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이제 어디서고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원칙으로 굳어진 요즘, 흡연자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데 따른 고통은 물론 담배를 피우는 데 따른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집에서는
가족들의 눈총 때문에 마음대로 피울 수 없고, 밖에 나가서는 더더욱 마음 놓고 피울 만한 곳이 없다. 이젠 담배
피우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라 고역이 된 것이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조선 중기인 선조나 광해군 때다. 그 이후 담배를 피우는 풍속이 급속도로 확산
됐다. 인조 때 이미 사회문제로 떠올라 담배 금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정조는 자신이 지독한 골초이자
담배예찬론자였지만 나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는 담배를 금지하려고 했다. 담배로 인한 폐해는 조선조부터 이미
문제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무명자(無名子) 윤기라는 분이 담배의 폐해에 대해 쓴 글을 보자.
“무릇 담배는 백 가지 해로운 점만 있고 한 가지의 이로운 점도 없으며, 많은 돈을 낭비하게 하면서도 한 가지도
쓸모가 없다. 그런데도 온 세상의 남녀노소와 귀천 현우를 막론하고, 모두 아주 좋아하면서 즐기고 있다. 그 맛이
아주 쓴데도 쓰지 않다고 여기며, 그 냄새가 아주 독한데도 독하지 않다고 여긴다. 담배의 쓰임새를 살펴보면,
적막함을 깨뜨리고 회포를 푸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만해지고 게을러지게 하며, 망자존대
(妄自尊大)하게 하는 도구인 것이다. 담배를 피우다 보면,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능멸하고, 비천한 자가
높은 자에게 대들 생각을 하게 된다. 윤리가 없어지고 등급이 무너지는 것이 모두 여기에서 말미암는다.”
윤기는 담배 탓에 생기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언급한다. 그는 담배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담배를 일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온 나라 안에 영을 내려서 현재 남아 있는 담배를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다 피워 없애게 한 다음 다시는
감히 담배를 심거나 담배 피우는 도구를 만들지 못하도록 엄하게 법을 만들어야 한다. 담배는 보이지 않는
굴속이나 은밀한 곳에 보관할 수 없어 모두 적발해낼 수가 있다. 담배를 금지하면 본래의 생업에 힘쓰고 말단적인
이익을 억누르게 될 것이며, 거만한 풍속이 순후한 풍습으로 변할 것이다. 천백 가지의 폐단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자의 흡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흡연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담뱃값을 올리고 담뱃갑에 더 강력한 경고 문구와 그림을 넣는 방안도 고려 중
이라고 한다. 그런다고 흡연율이 낮아질지는 의문이다. 어느 정도 낮아지기야 하겠지만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가장 좋은 정책은 윤기의 주장처럼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을 불법화하는 것이다. 마약처럼 담배의 경작, 제조, 유통
등 모든 과정을 법으로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들을 적극 단속한다면 담배의 해독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우리나라에서 이런 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주 강력한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하다.
이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지, 아니면 담배를 끊고서 사람 대접을
받을지 결정해야 한다. 결론은 뻔하다.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경제를 돌보고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어울리며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담배를 끊어야 한다. 그것만이 최선이다.
담배를 끊는 방법은 그야말로 단숨에 끊어야 한다. 금연 클리닉이나 의학적 도움 같은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금연 의지다.
자신의 의지가 굳세지 않으면 모든 방법이 다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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