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신 중국 뱃길 연행 사지 떠나듯 두려워했다”
"후손들에게 문과급제를 시키지 말라."
조선 중기 문신인 안경(1564~?)이 남긴 유언이다. 안경은 바닷길을 통해 사신으로 중국 연경
(현재 베이징)을 다녀오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후손들이 자신처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연행
(연경에 가는 사신 행차)을 가게 될까봐 이런 유언을 남긴 것이다.
안경처럼 바닷길을 통해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이 물길과 지형, 위험지역 등을 그림으로 남겨놓은 자료인
'수로연행도' 13종이 공개됐다. 임기중(75) 동국대 명예교수는 수로연행도 13종을 포함해 총 101종의
연행 관련 자료가 추가된 <연행록총간 증보판>을 최근 펴냈다. '연행록'은 사신들이 연행에서 겪은 일들을
정리한 기행문이다.
이번에 공개된 수로연행도는 여러 장의 그림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적으로 연행은 육로를 통해 갔지만, 1617~1636년 명·청 교체기에 여진족 때문에 육로가 차단되면서 뱃길을 통해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야
했을 때 작성됐다. 육로 연행은 200~500명에 이르는 대규모였지만, 뱃길 연행은 규모가 30여명에
불과했고 큰 배도 없어 작은 목선 6~7척에 나누어 타야 했다.
임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육로 연행에서도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많았지만, 바다로 가는 연행은 훨씬 위험해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말했다. 수로연행도는 화공이 직접 사신의 배에 같이 타 현장에서 그렸으며, 본국으로 돌아온 뒤 부본(또 하나의 원본)을 작성해 다음 수로 연행을 갈 사람들에게 참고 자료로 남겼다고 한다. 풍랑이 심했던 지역은 파도를 높고 험하게 그리고, 용오름 현상은 승천하는 용 그림으로 표현하는 등 흥미로운 점이 많다.
"중국의 문화가 수입돼 우리 문화에 영향을 주는 루트에 대해 고민하다 연행록에 주목하게 됐다"는 임 명예교수는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연행록 발굴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연행록에서 약자의 입장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발휘한 지혜를 찾을 수 있다"며 "중국에 조공을 바치긴 했지만, 연경에서 우리 자존심을 꺾고 굽실거린 관리들은 귀국하자마자 처벌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행록에는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던 중국의 문화, 연경에 모여든 일본, 동남아, 유럽인들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어, 우리나라 문헌으로서는 드물게 세계성을 띠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외교사, 생활사로서 연행록의 특징이 드러나는 일화로 '우황청심환 외교'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중국 관리들이 중요 자료를 보여주지 않는다거나, 어디에 들여보내지 않는다거나 하면 조선에서 가져간 우황청심환 한두 알을 슬쩍 건네주면 다 해결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뇌물'이었던 셈이다.
임 교수는 연행록을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고려시대부터 조선과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송·원·명·청 등 여러 왕조와 왕래하며 700여년 동안 교류기록을 남긴 것은 세계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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