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15-10-26
그 많은 가시 중에 장미 가시만큼이나 인류의 원성을 산 것도 없다. 아름다움을 꺾는 걸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줄기에 촘촘히 진을 치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장미 가시의 유래도 비슷하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장미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꽃에 키스를 했다. 마침 꽃 속에 있던 벌이 나와 에로스의 입술을 쏘았다. 에로스의 어머니이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화가 나 벌들의 침을 빼내 장미 줄기에 심었고 그게 가시가 되었다고 한다. 달콤한 키스에 상처로 복수한 장미는 바로 ‘배반의 장미’였다. ‘상처를 받은 나의 맘 모른 채 넌 웃고 있니 후회하게 될 거야’라고 노래한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 가사 그대로다.
그래서 장미는 모순이다. 사랑과 배신, 상처, 보복의 이미지가 모두 담겨 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기쁨이여’. 이런 묘비명을 남긴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그의 실제 사인은 백혈병이라고 한다. 1980년대 활동한 미국의 글램메탈 밴드 ‘포이즌’은 발라드곡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Every Rose Has Its Thorn)로 유명하다. 1988년 10월 발표한 이 곡으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했다. 밤이면 새벽이 오고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것처럼 달콤한 사랑 뒤에 상처가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가시 없는 장미 ‘딥퍼플’이 일본 도쿄 국제플라워엑스포에서 해외 생산자 부문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2011년 출시한 딥퍼플은 현재 13개국에 260여만주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국제무대에서 각종 상을 휩쓸고 있다. 가시 없는 장미가 경기도에 큰 기쁨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인가 가시의 고통을 안기고 있지나 않으련지.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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