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동서남북] 국사 교과서, 국정화로 기울게 된 까닭

바람아님 2015. 10. 30. 18:29

(출처-조선일보 2015.10.30 이한우 선임기자)


이한우 선임기자원점에서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할 것인가, '검인정'으로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두말 않고 
검인정으로 가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정화 논란은 진공상태의 논쟁이 아니라 
2002년 검인정 도입 이후 지난 13년에 대한 점검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미 기존 검인정 체제에서 국사 교과서 여러 종은 이념 편향, 좀 더 정확하게는 좌편향이나 친북 논란을 
거의 해마다 겪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검인정은 겉으로 교육의 다양성을 표방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다 고만고만한 필자들이 여기저기 
나뉘어 집필하다 보니 내용의 다양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심하게 말하면 교과서를 펴내는 출판사의 
다양성만 있을 뿐, 애초에 기대했던 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은 실종돼 버렸다. 
이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2013년의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다. 
그 책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부 역사학계나 일선 교사들이 주도했던 반(反)교학사 운동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민주 의식 수준에서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양태를 보여줬다. 
지금 정부가 주도하는 국정화도 실은 2013년 이 사태에 대응하는 성격이 짙고 국정화를 지지하는 쪽 사람 상당수도 
그때의 안 좋은 기억으로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돌아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중 한 명인지 모른다.

지금의 논쟁에서도 반대론을 이끌고 있는 야당조차 검인정 교과서들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얼마 전 
"기존 교과서들이 그만큼 문제라면 그것을 방치해온 박근혜 정부의 책임이다"라고까지 주장했다. 
이 말은 보기에 따라 교과서 자체의 문제점은 인정하는 꼴이 되는데 그걸 알고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사관(史觀) 논쟁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은 누가 보아도 과잉이다. 
교과서는 사관으로 편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평균인들의 양식(良識)에 기반해야 한다. 
상식보다는 조금 높은 양식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양식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이어지고 있는 역사학 교수들의 집필 거부 선언이다. 
학자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도 볼썽사납지만 양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니, 누가 집필을 의뢰하고 나서야 거부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양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누가 교과서 집필이라는 중대한 일을 맡기겠는가. 
국정화에 반대하는 교수들일수록 기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용기를 보여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둘째는 아직 집필도 하지 않은 교과서에 대해 '친일 독재 교과서' 운운하다가 대통령이 이 점을 지적하자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느냐"고 맞받아친 문재인 대표의 발언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그런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사람을 대선에서 이기지 못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  는 성명부터 
발표하는 것이 양식이다.

크게 보면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우리네 오랜 논란거리인 대통령제냐 의원내각제냐를 그대로 본뜨고 있다. 
우리는 의원내각제 해봤더니 엉망이더라라는 체험까지 보태지면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다. 흔쾌하지는 않지만 순수 검인정이 아니라 '지난 13년간의 검인정 체제'를 돌아보니 차라리 국정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