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한국 축구팬 vs 영국 축구팬

바람아님 2015. 10. 31. 21:27

(출처-조선일보 2015.10.27 팀 알퍼·칼럼니스트)


팀 알퍼·칼럼니스트 사진한국에서 축구 경기를 보는 것과 영국에서 보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영국의 경기장 관중석에서 들리는 함성은 보통 묵직한 저음이다. 
관중 대부분은 살이 적당히 오른 중년의 남성이다. 
이들은 보통 화가 나 있다. 선수가 골대를 멀리 벗어나는 '똥볼'을 차기라도 하면 
모든 이가 한 몸이라도 된 양 다 같이 "우~"라고 야유를 보낸다.

한국의 경기장 관중석에서 들리는 소리는 소프라노에 가깝다. 
K리그 관중을 잘 보면 대개 경기를 보며 비명을 지르는 10~20대 여성들이다. 
이들은 축구 선수들을 배우 김수현을 보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열광한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바리톤의 함성에 익숙한 내게 한국의 이런 풍경은 낯설고 신기하다.

한국의 축구팬들은 세계 축구계에서 점점 유명해지고 있다. 
최근 10여 년간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 관중은 90분 내내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는 엄청난 체력을 보여줘서 명성을 얻었다. 
한국 축구가 점점 실력이 올라가고 있는데, 열정적인 팬들의 응원이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열정은 한국인 특유의 가무(歌舞) 능력 덕분이 아닐까 한다. 
다른 나라의 축구 팬들도 90분 내내 응원가를 부르긴 한다. 
하지만 마치 한목소리로 부르는 것처럼 '떼창'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없다. 
한국에선 메가폰을 든 몇 명의 사람이 앞에 나서서 이 '떼창'을 이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영국인들도 경기장에서 합창을 하긴 하지만, 그런 일은 드물다. 
영국에서 누군가 메가폰을 들고 앞에 나서면 "경기 보는 걸 방해한다"며 비난받기 딱 좋다. 
영국 관중은 응원하는 팀이 잘할 땐 미친 듯 열광하지만 못할 땐 마치 도서관  에 온 것처럼 침묵으로 야유하기도 한다. 
마디로 제멋대로다.

난 한국과 영국의 응원 스타일 모두 좋아한다. 
한국처럼 팀이 잘하든 못하든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영국처럼 제멋대로 응원하는 것도 재밌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응원하는 팀이 죽 쑤고 있어도, 응원하는 재미 덕분에 심심하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사랑하는 두 민족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