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세상이야기

유영국 화백 판화전, 고향 울진의 山에 취해 한평생 色과 노닐다

바람아님 2013. 5. 1. 12:09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유영국 화백의 1980년작 색면추상화 ‘산’.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유영국 화백의 1980년작 색면추상화 ‘산’.


‘술을 마시고선 절대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이 나의 성미며, 버릇이다. 그리고 밤에는 일을 안 한다. 매일 아침 8시에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고 하루 여덟 시간 정도 그림을 그린다.’

평생 명예와 권력, 돈을 모르고 살다 간 1세대 모더니스트 유영국 화백(1916~2002)은 공장 근로자처럼 작업 시간을

지켰다. ‘그림은 나의 업무’라고 말할 정도로 직업의식이 투철했다.

일본 도쿄문화학원에서 유화를 공부한 유 화백은 1937년 일본 추상미술 재야운동단체인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작품을

처음 발표한 이후 덕수궁미술관에 마지막 신작을 내놓은 2000년까지 60여년간 오로지 추상회화 외길만 걸었다.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2년씩 교수로 재직했지만 작업에 방해가 되자 교단을 떠났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9년 예술원 회원이 된 후 예술원상과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가 여든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11년.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갤러리에서 29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펼쳐지는 ‘추상미술의 거장-유영국 판화전’은 한국화단에 추상미술의 씨앗을 뿌린 대가의 예술정신을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색과 노닐다(遊於色)’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엄격한 구획선으로 색과 면을 나눈

1980년대 작품 ‘산’을 비롯해 기하학적 색면추상화를 판화로 찍어낸 대표작 20여점이 소개된다.

유 화백의 화풍은 처음부터 끝까지 산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산의 화가’로 불릴 정도로 평생 우리 고유의

넉넉한 산들을 모티브로 삼았다. 유 화백은 주위에 온통 산뿐인 고향 경북 울진의 풍경을 모태로 1955년 ‘산이 있는

그림’을 처음 선보이면서 대자연의 복합적인 조형요소를 단일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색면추상화는 원만하고

막힌 데가 없다. 전성기의 추상적 그림들은 커다란 캔버스를 바탕으로 확장하거나 진동하는 듯하다. 삼각형 색·면들을

부유하는 산의 형상으로 병치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말년으로 갈수록 화폭은 점점 화려해졌다. 

 이번 출품작들 역시 완전한 추상이라기보다는 자연에 바탕을 둔 추상이다.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내부에 숨어 있는 자연의 근원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가 대상으로 한 것은 자연

이었고, 그것을 탐구해 온 형태는 비구상을 바탕으로 한 추상이었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물로서의 자연이

아니고 선이나 면, 색채 그리고 그런 선과 면과 색채들로 구성된 비구상적인 형태로서의 자연이다”라고 설명했다.

미술평론가 이인범 상명대 교수는 “끈기 있게 다듬은 색면 작품들은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작가의

정열적인 감성을 색깔로 승화해낸 자연”이라며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듯한, 광휘에 찬 색채가 체온을 뜨겁게 한다”

고 평했다.

유 화백의 그림값은 국내 미술시장에서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과 함께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는

1983년 신세계미술관에서 열린 열한 번째 개인전에서 작품값을 당시 국내작가 중 가장 비싼 호당 80만원으로

선언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008년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유 화백의 색면추상 작품 ‘무제’가 6억원에 낙찰돼 자신의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