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11-19
주성하 기자
한국 언론은 ‘김정은의 무리한 치적 쌓기용 건설’이라고 평가절하한다. 틀린 비판은 아니지만 그것이 왜 하필 과학기술 분야일까 하는 점은 관심 밖인 것 같다.
나는 그 거리에서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김정은의 강열한 의지를 엿보았다. 김정일 사망 4개월 뒤인 2012년 4월 15일, 김정은은 자신의 시대를 선포하는 첫 공개 연설에서 ‘지식경제강국 건설’을 공언했다. 그때는 단지 홍보용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의 행보를 보니 빈말은 아니었다. 2013년 은하과학자거리를 건설했고, 다음 해엔 은정과학자거리를 건설했다. 모두 과학기술자들을 위한 대규모 주택단지다. 이외 김일성대 교직원 아파트, 과학자 전용 휴양소 건설 등 사례는 많다. 왜 집만 지어 주냐는 궁금증도 당연히 있겠지만, 김정은이 자기 딴엔 과학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으로 보인다. 어쨌든 김정은 집권 4년 동안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쏟은 관심과 투자는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와 비교해 볼 때 너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고 핵, 미사일 종사자들만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다.
21세기가 지식 정보화 시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과학 기술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은 시대의 흐름과 일치한다. 지금은 인재 1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 얼마 전 중국에 가봤더니 해외 인재가 귀국하면 일시금으로 20만 달러를 주는 등 각종 파격적 혜택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한국도 근대화 흐름을 놓쳐 식민지가 되는 수모를 당했지만 이후 세계의 찬사를 받을 만큼 성공적인 산업화 사회를 만들었고, 지식 정보화 사회에도 비교적 잘 적응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최고 수재들이 너도나도 의대에 진학해 쌍꺼풀 수술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역사는 과학기술과 기업이 앞서 가는 나라는 항상 번영한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북한의 기업 환경은 어떤가. 이 부문도 믿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엔 개인이 기업을 운영하려면 국영기업 소속이란 외피를 써야 했지만, 올해부턴 독자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10명 미만 소기업 형태도 등장했다. 정말 빠른 변화다. 김정은의 과학기술 중시와 활발한 창업이 언제까지 계속될진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아무리 선견지명이 있다 한들 현재 환경에선 실패가 눈앞에 예고돼 있다. 북한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이다. 인터넷도 없고 유학도 갈 수 없다. 전기 등 기초적 인프라도 안돼 있는 산업 환경에서 설사 획기적인 기술이 나온들 그림의 떡이다. 정말 지식경제강국을 만들고 싶다면 이제 김정은이 해야 할 최대 과제는 북한과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미션일까.
요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설이 솔솔 흘러나온다. 해외 정상이라고는 만나본 적이 없는 김정은에게 유엔의 수장이 찾아온다는 것은 엄청난 홍보 호재임은 분명하다. “김정은이 너무 위대해 유엔 사무총장도 머리 숙이고 찾아온다”는 식으로 선전할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라면 북한은 비전이 없다.
김정은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세계로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김정은이라면 할 수 있는 제안이 많을 것 같다. 가령 지구촌이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테러로 분노하면서도 정작 지상군을 보내겠다는 나라가 없는 현실에선, IS의 공격에서 가장 안전한 북한은 이런 제안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지상군을 파병해 서방국가를 도와 싸우겠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테러 국가, 악의 축으로 인식돼 있는 북한의 이미지는 어떻게 변할까. 김정은에게도 지구촌의 슈퍼맨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중동 사람들이 코리아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 걸리긴 하지만, 설마 IS가 ‘노스’와 ‘사우스’를 구분 못해 북한이 기뻐할 일을 할 것 같진 않다.
물론 김정은에게 그럴 의지나 용기가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 총장이 방북한다면 김정은의 그릇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주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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