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11-21
▷야구 세계랭킹 상위 12개국 국가 대항전 프리미어12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둔 일본이 야구의 올림픽 종목 부활을 위해 발 벗고 나서 올해 처음 열렸다. 개막전에서 한국을 0-5로 이긴 일본은 준결승전이 열리기도 전 이미 결승에 진출한 듯 들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올해 일본 저팬시리즈에서 한국인 최초로 MVP를 차지한 이대호가 역전 2타점 적시타를 터뜨리자 도쿄돔은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에 휩싸였다.
▷한국팀은 역대 최악의 상황에서 출범했다. 단기전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투수진은 도박 스캔들이 겹쳐 최약체였다. 이 대회에서 우승해도 선수들은 병역 혜택도 못 받는다. 주최국 일본은 준결승 날짜를 갑자기 하루 앞당기고 일본인 선심까지 배정했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일본의 이런 꼼수를 선수들이 승부욕을 불태우는 계기로 반전시켰다. 무엇보다 “사람이 던지는 건데 왜 못 치겠어, 한번 해봐”라는 말로 침묵의 한국 타선을 끝까지 믿고 격려했다.
▷한국의 한 누리꾼이 “야구를 왜 인생이라고 하는 줄 알겠다. 이 경기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 스포츠 이상의 드라마다. 힘든 일 겪는 분들 경기 보고 모두 희망을 가지시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난 그제 9회초 경기가 막 시작된 뒤 친구들과 함께 한 호프집에 들어섰다. 호프집은 순식간에 열광의 부산 사직구장처럼 달아올랐다.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지옥의 한국)의 자조가 나오던 우울한 분위기를 모처럼 날려 버리는 순간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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