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암초에 일본은 1931년 오키노토리시마란 이름을 붙이고 도쿄도 오가사와라무리(小)笠原村)에 집어넣어 영토 선언을 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군용 등대 설치를 시도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따라 오가사와라 군도와 함께 미국의 행정관할 구역에 속했다가 68년 일본에 반환됐다. 일본은 87년부터 자연침식에 의한 소실을 막기 위해 돌출 암초 두 곳 주위에 호안(護岸)공사를 하고, 콘크리트 구조물을 암초에 올려 두 개의 인공섬과 무인등대를 설치하는 등 공을 들였다. 자연침식에 약한 산호초를 지키려는 현상유지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들인 ‘섬 만들기’는 결국 일본의 해양영토 확장 욕심에서 비롯한 국가적 투기인 셈이다. 일본은 이미 이곳을 기점으로 한 영해ㆍEEZ를 선포했다 물론 관련 주변국 반발만 불렀을 뿐 현재까지 국제법상 효력은 철저히 부인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국제해양법 질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 이곳이 영해와 EEZ를 가질 수 있는 섬으로 인정될 경우에 주변 바다에서 일본이 확보할 경제적 이익은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 어제 파이낸셜타임스(FT)를 인용한 국내의 오키노토리시마 관련 보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공섬에 산호초를 심어 영토확장에 나섰다’, ‘인공섬에 3㏊ 규모의 산호초를 심는다’ 등의 내용이다. 산호초는 강장동물인 산호의 석회질 외골격이 바다에 쌓여 만들어진 바위인데, 이를 ‘산호초(珊瑚草)’쯤으로 오해한 것일까. 가장 큰 인공섬의 직경이 5m에 불과한데 3㏊의 산호 서식지를 조성한다니, 오키노토리시마 전체를 인공섬으로 여긴 걸까. 그런 엉터리 내용 때문에 일본의 집착을 부각하려던 뜻까지 빛 바랬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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