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8.09 길해연·배우)
드드드드~ 전화기가 몸을 비틀며 전화 좀 받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모르는 번호다.
새로 바꾼 전화기는 진동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어떨 때 보면 부르르 몸을 떨다가 벌떡 일어나
재주넘기라도 할 것 같다.
"잘 지내시죠,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허허허, 지금 어디세요?"
그는 후배 Y의 남자친구 X였고 예전에 몇 번 자리도 함께했던 기억이 났다.
그는 후배 Y의 남자친구 X였고 예전에 몇 번 자리도 함께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정작 그 후배와도 2년 전엔가 보고 명절 때 문자 주고받는 정도로 지내고 있는 터라
'어디세요?'라는 질문이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일산요, 촬영하느라…."
"강남 찜질방 아니고요?" X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대충 뜬금없는 전화의 이유가 파악되었다.
"강남 찜질방 아니고요?" X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대충 뜬금없는 전화의 이유가 파악되었다.
후배는 무슨 연유에선가 남자친구에게 거짓말하면서 내 이름을 팔았고, 의심이 간 남자친구는 내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본 것이리라. X는 이런 일이 몇 번짼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뒤의 상황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X는 시치미를 떼고 Y에게 확인을 해 볼 것이고 Y는 또 거짓말을 할 것이고….
이 막장 커플 드라마에 왜 내가 졸지에 출연하게 된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Y는 예전에도 이런 식의 거짓말로 주변 사람들을 공범으로 만들곤 했다.
"전화를 해서 혼을 내 줘? 아니면 그렇게 살지 말라 붙들고 충고를 해봐야 하나?"
문자가 연거푸 띵똥띵똥 들어왔다. '언니 미안, X 정말 미쳤나 봐. 내 전화기에서 언니 전화번호 몰래 따놨었나 봐.
기가 막혀서 정말.' '내가 막 화냈더니 잘못했대.
언니는 딴 땐 전화 안 받더니 어떻게 그 전화는 받았대.
안 받을 줄 알고 언니 이름 판 건데. 잘 지내고 언니, 파이팅!'
화가 나기보다는 맥이 빠졌다.
Y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땐 늘 다른 문제를 끌고 들어와 왜 그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를 헷갈리게 하고 눈물이라도 팔아
상대방을 무기력하게 만든 다음 교묘하게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로 분위기를 몰아가곤 했었다.
이번에도 Y는 어리숙한 X로부터 되레 사과까지 받아낸 것이다.
'여전하구나. 그리고 여전히 그 방법이 먹히고 있구나.'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자는 왜 패션을 싫어할까? (0) | 2016.08.10 |
---|---|
[The New York Times] 여성이 출세해야 남성도 잘된다 (0) | 2016.08.09 |
[천자칼럼] 춘원 이광수 (0) | 2016.08.08 |
"솔로, 결혼한 사람보다 더 긍정적"..과학적 입증 (0) | 2016.08.07 |
<살며 생각하며>커피 한 잔의 여유와 행복 (0) | 2016.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