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에 담은 소설 ‘혼불’
왼쪽부터 정소라 작, 최윤진 작, 임승한 작.
'혼불'은 전북 남원 출신의 최명희(1947~98)씨가 17년 긴 세월을 받쳐 쓴 대하소설이다. 작가가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듯 피와 혼으로 한마디 한마디 써 내려갔다"고 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원고지가 무려 1만2000장이나 된다.
소설은 1930~40년대 남원·전주를 배경으로 몰락해 가는 양반가의 며느리 3대와 그 문중에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들의 굴곡진
삶을 줄거리로 한다. 일제강점기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키려는 양반사회,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의 전통적인 세시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언어로 복원해 내 '우리 풍속의 보고
(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 최고의 책(교보문고 선정)'인 소설 '혼불'이 그림과 만났다.
지난 1월31일부터 2월 13일까지 전주 한옥마을의 최명희문학관·부채문화관에서 열리는 '선화에 담은 혼불전'. 문학과 미술이라는
두 장르의 조화를 통해 지역의 문화유산을 새롭게 조명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전시회다. 전북에서 활동하는 한국화가(고형숙·
이봉금·이홍규·장지은·최윤진) 5명과 서양화가(서은형·임승한·정소라·진창윤·최지선) 5명이 참가했다.
이들 젊은 미술작가는 혼불을 읽고 재해석해 그 느낌을 화폭에 담아 냈다. 소년·소녀가 소꿉장난하는 장면을 그리기도 하고, 흥겨운
전통 결혼식을 묘사하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감정을 색색의 꽃그림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달빛 하얗게 쏟아지는 댓돌 위의
검은 신발, 소망을 가득 실은 연이 하늘로 두둥실 높이 떠가는 장면도 담았다.
화가 정소라씨는 "청암 부인 등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이 가슴을 칠 정도로 감동적이라 그림으로 옮기기가 버거워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 최지선씨는 "부모님과 옛날 동네 어른들이 얘기하던 풍경들이 곳곳이 나와 있어 친숙했다. 특히 주인공 강모·
강실이 소꿉놀이는 하는 장면에는 내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최기우 문학관실장은 "'혼불에 한 소쿠리 순결한 모국어를 담아서 시대의 물살에 징검다리를 하나를 놓고 싶다'던
작가의 소망이 문학과 미술의 아름다운 만남을 통해 새롭게 구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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