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지진은 일본만의 재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규모 9.0 진도7) 발생 사흘 뒤 피해 지역에 들어갔습니다. 2주간의 취재기간동안 일본 전역에선 진도5 이상 여진이 11번 발생했습니다. 올해 4월 구마모토 지진(규모 7.3 진도 6강) 때도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진도5 이상의 여진이 17번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은 지진을 많이 경험하면 익숙해진다고 하던데, 저는 반대로 없던 지진 공포증이 새로 생겼습니다. 지진의 흔들림 자체보다 흔들릴 때 주변에서 나는 '찌그덕 찌그덕' 소리가 더 공포스럽습니다.
지난 12일 발생한 우리 경주 지진은 규모 5.8에 최대진도6(본진 기준)이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진도5은 꽤 자주 있지만, 진도6 이상은 드뭅니다. 2013년 1회, 2014년 1회, 2015년엔 없었고, 올해 들어선 구마모토 지진이 터지면서 8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도 5까지로 넓히면 지난 10년간 64회가 아래 그림처럼 전국에서 발생했습니다.
지진은 일본 사회 곳곳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부동산' 비즈니스입니다. 오래된 집은 99% 집값이 쌉니다. 우리나라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집값이 올라가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일부 집중개발 지역 제외) 겉으론 멀쩡해도 수년간 크고 작은 지진을 겪었으니 이른바 '유레쓰가레'(흔들림 피로)가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 건축기본법에 따르면 예전 집들도 지진에 버티는 내진 보강이 의무화돼 있습니다. 그래도, 걱정인 것이죠. 월세정보업체 웹사이트에서 집을 검색할 때는 '건축연한', '목조', '철골' 등을 주요 검색조건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신규 아파트나 건물들은 저마다 얼마나 좋은 내진 설계를 갖추고 있는지 강조합니다. 현재 일본의 의무적인 내진 설계 기준은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중지진(진도5 이하) 때는 '건물이 흔들린 뒤 원상태로 돌아오면서 경미한 갈라짐만 남는다.' 대지진(진도6,7) 때는 '건물이 원상태로 완전히 돌아오지 않더라도 붕괴되지 않는다' 입니다. 진도8 이상은 불가항력으로 보는 듯합니다.
일본의 한 은행원 분과 식사를 하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일본 부유층들은 집을 살 때 예전 도쿄 고지도를 참고합니다. 고지도를 통해 예전부터 지반이 단단한 지역을 파악해 그 지역 부동산에 투자를 하죠. 도쿄도는 과거 수세기에 걸쳐 인구가 급증하면서 그만큼 땅을 넓혀왔습니다. 해안지대와 저수지, 습지 등을 매립하는 방식을 썼죠. 대표적인 곳이 '오다이바'입니다. 하지만, 지진이 자주 일어나면 결국 땅 아래가 젤리처럼 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지도 속에서 원래부터 단단한 곳을 파악하는 것이죠." 한 일본 부동산 컨설턴트는 도쿄 고지도 위에 주요 고급 맨션들의 위치를 표시해두기도 했습니다.(아래 사진)
지진의 영향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에선 재난 비상용품 시장이 굉장히 큽니다. 아래는 냉장고에 넣지 않고도 상온에서 7년간 보존할 수 있는 물입니다. 온라인 쇼핑몰인 일본 아마존에서 500ml 24통을 3200엔(3만5000원)에 파는군요. 품질 보증서도 있습니다. 이런 일명 '보존수'가 한두 종류가 아닙니다.
유독 일본에서 하이브리드(hybrid) 자동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lugin-hybrid) 자동차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대지진과 관련이 있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차에서 생활을 했는데요. 당시 주유소가 문을 닫으면서 기름이 떨어진 차량에서 고생을 한 사람들이 많았죠. 이후 기름과 전기배터리를 함께 쓰는 고연비 하이브리드 차량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최근엔 주변 콘센트에 전기플러그를 꽂아 충전할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아래 사진처럼 차량 충전배터리의 전력을 전자렌지, 전기밥솥 등에 연결해 쓸 수 있습니다.
가전제품 양판점에서는 비상 시 손잡이를 뱅뱅 돌려 자체 충전할 수 있는 라디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래 비상 라디오는 대기업 소니가 직접 만들었네요. 앞쪽에 불을 비추는 라이트도 달려 있습니다. 일본 아마존에서 7920엔(8만7000원)입니다.
일본 거리를 걷다보면 유난히 전봇대가 많습니다. 사진은 제가 사는 도쿄 미나토구 일대 전봇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전선을 지하에 매설하는 지중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죠.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전봇대 천지입니다.
지진 발생 시 단전이나 누전 부분을 쉽게 찾아낼 수 있고, 복구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들기 때문입니다. 수시로 일어나는 작은 지진 때마다 수시 점검하기도 좋습니다. 또, 일본은 220V를 쓰는 우리나라와 달리 110V를 쓰고 있습니다. 220V에 비해 110V는 송배전 시 전력 손실이 많지만, 상대적으로 사고 때 덜 위험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처럼 110V를 썼지만,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220V로의 승압을 결정했죠.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각자의 사정에 맞게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최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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