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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학자들 “세계경제 뇌관 청년 실업, 대대적 부양책이 해법”

바람아님 2016. 9. 25. 23:26
조선일보 : 2016.09.25 10:16

[Weekly BIZ:"정부, 시장서 손 떼야""시장 스스로 교정 못해" 엇갈린 시각]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8년이 지났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회생 조짐이 뚜렷한 미국과 장기 침체 국면이 계속되는 다른 경제권으로 양분되는 분위기다. 여러 나라에서 여전히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고, 국가 간 교역량은 줄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깊어지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인류가 신봉해 온 지식과 경험이 순식간에 과거의 유물로 변해버릴 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요즘, 한국 경제는 어떤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할까. 2006년 10월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언론을 통틀어 최초의 주말 프리미엄 경제·경영 섹션으로 출범한 위클리비즈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간 위클리비즈가 만났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보여준 혜안 가운데 현재 상황에도 유효한 내용을 정리했다.


글로벌 석학들은 세계 각국의 경기 부양책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린 의견을 내놨으나, 현재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불평등 문제와 실업률,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화하는 고령화 현상, 중국 문제도 석학들이 공통으로 연구하고 고민하는 분야였다.



규제가 시장 망친다 vs 시장은 스스로 기능 못해

“정부 규제를 보다 완화해야 저성장 국면에서 탈출할 수 있다.”(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 2016년 9월 3일자)

‘효율적 시장 가설’의 창시자이기도 한 파마 교수는 세계 경제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지나친 규제’를 꼽았다. 같은 대학 라스 피터 핸슨 교수의 생각도 비슷했다. 핸슨 교수는 “정부 규제는 간단명료한 형태의 수준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교수는 정부 개입이 시장을 왜곡시키므로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시카고학파의 대표 주자다. 시카고학파는 30년 넘게 미국 경제계를 주도해왔으나,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로 인해 코너로 내몰리기도 했다. 2013년 두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자 사람들은 ‘세계 경제가 금융 위기 여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시카고학파는 아니지만 핀 키들랜드 카네기멜런대 경제학과 교수도 확고하게 ‘시장의 편’에 서 있다. 그는 “경제 주체들이 가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만, 정부의 나쁜 규제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시장은 스스로 교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은 규제 대상이며, 혁신이라는 측면에서도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스티글리츠 교수의 생각이다.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도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주류경제학의 기본 토대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 또는 집단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 심해질 불평등,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비하라

“30년 혹은 50년 후 불평등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2014년 3월 8일자)

실러 교수는 “불평등이 최근 들어 특히 심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전 탓에 직업이 사라지고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전에 없던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게 실러 교수의 생각이다.

실러 교수의 이러한 분석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나 에릭 매스킨 하버드대 교수의 생각과 일치한다. 디턴 교수는 “새로운 혁신은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낸다”고 봤다. 매스킨 교수 역시 “자유무역과 기술적 진보는 사회적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이나 창조적 파괴를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디턴 교수는 “혁신으로 인해 발생되는 불평등은 좋은 불평등”이라며 “그래도 불평등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기에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러 교수는 “고소득에 대해 굉장히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동시에 기부금 공제를 확대해 고소득자의 기부를 유인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도 수십억 달러를 소비할 수 없는 만큼, 막대한 돈이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세금 정책을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디턴 교수는 소득 상위 1%에게 최고 80% 소득세를 물리는 등의 과격한 정책보다는 각 나라의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령 세율을 소득의 90%로 올린다면 모든 사람은 세금을 안 낼 방도를 찾을 것이라는 게 디턴 교수의 생각이다.

매스킨 교수도 “정부가 주도하는 부의 이전은 단기적인 처방”이라며 “정부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을 노동자들에게 가르쳐 이들의 실질소득을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실업률은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위협

실업률 못 잡으면 대재앙 온다.”(피터 다이아몬드 MIT 교수, 2012년 5월 26일자)
다이아몬드 교수와 크리스토퍼 피서라이즈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청년 실업이 세계 경제의 뇌관이라고 성토했다. 지난해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은 각각 48%와 40%를 넘었고, 프랑스와 벨기에의 청년 실업자 비율도 24.7%와 22.1%를 기록했다. 이들 국가와 비교하면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기는 하나, 한국의 청년 실업률도 올해 8월 기준으로 9.3%를 기록하면서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벤 버냉키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진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금의 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구조적인 위기”라며 “실업자의 증가는 세계 경제에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정부의 대대적인 부양책이 있어야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피서라이즈 교수는 “정부는 기간산업에 투자해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법인세를 낮춰 기업 부담을 줄이고 고용 여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퇴 정년’도 실업 문제 해소 방안으로 자주 언급됐다. 피서라이즈 교수는 “청년 실업률을 낮추려면 은퇴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다소 역설적인 주장을 폈다. 정년이 늘어나면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이는 세수(稅收) 증가로 이어진다. 그 결과 정부의 재정지출이 감소하고 소비인구가 증가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피서라이즈 교수의 설명이다.


에릭 매스킨 하버드대 교수도 은퇴 시기 연장에 동의한다. 그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소득을 올리면 경제가 성장하고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일자리의 숫자도 늘어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불경기에서 실업 상태가 1년을 넘기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만들어서 실업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위험한 상태… 부채 증가 속도 늦춰야

중국의 빠른 부채 증가 속도는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문제다.”(로버트 엥글, 2015년 12월 19일자)

엥글 교수는 “중국 정부가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현 추세를 끊지 못한다면, 추후 세계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는 엥글 교수처럼 중국에 대해 우려스러운 시각을 나타낸 이들이 많았다.


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를 누리도록 하면 그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갈망하게 될 것’이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중국은 현재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한다. 앵거스 디턴 교수도 “중국의 경제 개발 모델은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조언도 나왔다.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일찌감치 제기하는 복지 공약에 대해 “고령화 사회에서 자금이 없는 상태로 복지 기금을 주는 것은 큰 문제”라며 “사회보장기금이나 새로운 복지제도는 재원을 조달할 방법이 마련된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턴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북한 원조에 대해 ‘쓸데없는 짓’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결국 독재자에게 흘러갈 지원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원조가 북한 주민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독재자의 생존을 돕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