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자산시장 거품 배경엔 금융 자유화 부작용
지난 8월말 상하이 이혼 등기소에는 문을 열기 두 시간 전인 오전 7시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다. 중국 언론은 이를 "야채 시장 같은 이혼 등기소"라고 전했다. 부동산 추가 구매를 위해 위장 이혼을 하는 사람이 늘면서 2013년 부동산 열풍 이후 3년 만에 부동산 투자를 위해 이혼하는 행렬이 재개됐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의 부동산 광풍은 주식 거품 붕괴에 이은 것이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작년 6월 5100대까지 올라섰다가 1년여 만에 3000대로 내려왔다. 증시 자금까지 빨아들인 부동산 광풍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팡정(方正)증권은 "10월 1일 국경절 전후 쏟아진 20여개 지방정부의 투기 억제책 때문에 18개월 연속 오르던 이번 부동산 가격 상승 국면이 끝나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잃어버린 10년'에 빠져들기 전 일본 경제를 보는 듯한 데자뷔(기시감·旣視感)를 느낀다는 시각이 많아진 이유다. 일본은 1990년대 초 자산 거품 붕괴 이후 일본은행이 금리 인하 등 부양책을 폈지만 '유동성 함정'에 빠져 이후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중국에서 지금 불고 있는 부동산 광풍은 과거와는 달리 경기 둔화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당국의 고민이 크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9일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했다고 발표하면서 "예상보다 좋다"고 자평했지만, 다음 날 발표된 업종별 성장률에서 부동산이 8.8%로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식 거품 붕괴에 이은 부동산 광풍만이 '중국판 잃어버린 10년' 우려를 키우는 건 아니다. 부채 중독, 민간 투자 위축, 수출 감소 등도 당시 일본과 닮은꼴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데자뷔 이달 19일 런민은행 상하이 본부는 25개 은행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책임자를 소집해 계약금 출처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12일 런민은행이 17개 은행 모기지 담당자를 불러 대출 리스크를 경고한 지 일주일 만이다. 주택을 구매할 때 자기 돈으로 내야하는 계약금마저 P2P(개인 간) 플랫폼과 부동산 중개인 등을 통해 불법으로 대출받는 사례가 늘어날 만큼 부동산 광풍이 불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기업들이 본업보다 부동산 이득에 집중하면서 경쟁력을 잃을 리스크에 처해 있다"(런민일보)는 경고가 나올 정도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주택 가격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집값을 잡지 못하는 지방 관리들에 대해서는 응당한 책임을 지우겠다"고 경고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노무라증권은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20여년 전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올 들어 9월까지 중국의 주택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43.2% 급증했다.
자산 거품 뒤에 부채 중독이 있는 것도 과거 일본과 닮은꼴이다. 18일 런민은행이 발표한 금융 동향에 따르면 위안화 신규 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장기 가계대출 비중은 1분기 23%에서 2분기 47%, 3분기 60%로 급등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느슨한 대출이 부동산 매입 광풍을 부추겨 중국 경제를 부양하고 있다"고 분석한 배경이다.
"지금 중국의 신용 등은 1980년대 버블 시대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는 러셀 존스 루엘린컨설팅리서치그룹 파트너의 관측도 맥을 같이한다. 일본에서 총통화(M2)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 140%에서 1991년 190%까지 상승했고, 중국도 2008년 약 140%에서 올 9월 말 기준 286%까지 올라갔다.
국내외 부동산으로 시중 자금이 몰린 데다 과잉설비 탓에 민간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것도 당시 일본과 비슷하다. 중국의 민간 투자는 올 들어 9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에도 10.1%로 두 자릿수를 유지했지만, 자금의 부동산 쏠림이 심화되면서 크게 둔화됐다. 일본도 민간 설비투자 증가율이 1990년 11.2%에서 1991년 2.7%로 급락한 데 이어 1992년엔 마이너스(-) 5.7%로 돌아섰다.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크게 줄어든 것도 일본과 닮았다. 1~9월 중국 경제성장에 대한 순수출의 기여도는 마이너스 7.8%로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일본 역시 1980년대 초반 순수출 경제성장 기여도가 23%에 달했지만. 1985년 미국의 압력에 따른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가치 절상으로 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금융 규제 완화 후폭풍 일본이 1990년대 초 ‘잃어버린 10년’에 진입할 당시 경제와 지금의 중국 경제는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 거품 뒤에 금융 자유화가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1983년 금융 자유화에 들어간 일본에서 회사채 발행이 자유화되면서 기업들의 은행 대출 의존도가 줄자, 수익성이 떨어진 은행들이 주식이나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을 늘리는 등 리스크가 큰 업무를 확대했다”(2016 중국 자본시장 연구 보고)는 것이다. 금융 개혁과 투기 행위 간 상관성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일본의 금리 자유화도 은행이 더 대담하게 리스크가 큰 자산 매입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일본은 1994년 10월 금리를 완전 자유화할 때까지 규제를 점진적으로 완화했다. 경제학자들은 규제의 틀 속에서 안정적인 예대마진(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 간 차이에 따른 수익)을 누리던 은행들이 금리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에 대출할 유혹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 실제 은행 대출 가운데 부동산 담보대출 비중은 1984년 17%에 그쳤지만 1988년에는 20%를 넘어섰다.
중국은 2015년 10월 금리를 자유화했고, P2P 대출과 같은 핀테크 규제를 최소화하면서 자산 거품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중국의 P2P 대출 잔액은 9월 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53.51% 증가한 9564억위안(약 159조61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중국 국무원이 이달 13일 ‘인터넷 금융 리스크 정돈 업무 시행 방안’을 발표하고 런민은행 등 17개 부문이 손잡고 핀테크에 대한 금융 감독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배경이다.
한국은행 베이징 사무소는 “중국 내 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유기업의 개혁 성공 여부가 향후 중국 경제의 유동성 함정 진입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가을 공산당대회에서 지도부를 새로 짜기 전까지 중국 당국은 개혁보다는 경제 안정을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WSJ의 분석처럼 경기 부양책은 단기 성장에 도움을 주지만 과잉생산 능력과 높은 수준의 기업 부채를 감추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 목적을 위해 구조 조정을 늦출 경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같은 저성장 터널로 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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