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주변이 없어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터라 나는 말 잘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그런 이들을 흉내도 내보았지만 그이들의 재미난 이야기도 내가 옮겨 하면 별 재미가 없는 듯했고 외려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져 난처해진 경우가 더 많았다. 대체 말 잘하는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겨우 찾아낸 게 하나 있다. 이게 정말 비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말 잘하는 이들은 대체로 남의 말에도 귀를 잘 기울였다.
이문구 선생은 어느 산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낙향해 살던 선생은 어느 날 시내로 장을 보러 나갔다가 맘에 쏙 드는 생선을 보았으나 혼자서 사 먹기에는 분에 넘치는 반찬거리인지라 값을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한채 머뭇거렸다. 한 노부인이 생선장수 함지박 앞에 서더니 다짜고짜 넙치를 손에 들고 “월매나 헌댜?”라고 물었다. 생선장수는 만원은 받아야 하지만 마수걸이니 팔천원만 달라고 했다. 노부인은 넙치를 던지듯이 놓으면서 “팔천원이라구 이름 붙였남” 하고 불퉁거렸다. 그때부터 생선장수와 노부인 사이에 흥정이 시작되는 거였다.
소설가 한창훈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고추를 좀 사기 위해 여수항 근처를 기웃거리던 그는 때깔 좋은 고추를 늘어놓은 노점상을 발견하곤 주인사내에게 얼마냐고 물었다. 그해 고추 작황이 좋지 않아 웬만하지는 않으리라 짐작은 했으나 듣기에 귀가 아플 만큼 비쌌던지라 그도 고추값이 뭐 이리 비싸냐고 투덜댔다. 그 말에 주인사내는 기분이 좋다 나쁘다 식의 말 대신 “그러게 말이오, 사람 고추값은 싸디 싼디”라고 하는 거였다. 주인사내의 신세한탄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고추를 두어 근쯤 팔아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인정일 테다.
그 소설가들의 문장이 일상에서 길어올린 평범한 언어임에도 싱싱하고 눈부실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이들이 남의 말에 무심하기는커녕 외려 사소한 한마디에 담긴 진정을 헤아릴 줄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러기에 말 잘하는 이들은 그냥 말을 잘하는 이들이 아니라 분주하고 각다분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일 줄 아는 이들이려니 싶은 것이다. 그에 비견할 만한 나만의 언어와 문장이 없다는 건 곧 내가 그이들만큼 남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탓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럼에도 늘 이처럼 새해 벽두가 되어 올해를 어찌 살아갈지 생각하다보면 나를 사로잡았던 지난날의 한 풍경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여름이었다. 가망도 없는 소설을 계속 써야 할지 아니면 다른 학생들을 본받아 취업준비를 해야 할지 작정하지 못했던 나는 고향집 대문을 나서는 것으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더러 가스 배달차며 우유 배달차며 지나가는 승용차도 얻어 타면서 일정을 맞췄는데 해남에서 강진으로 건너갈 때는 버스를 탔다. 승객이라곤 나 말고 강진읍내로 가는 아낙 두엇뿐인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섰다. 버스 기사가 뒤돌아보며 마을 쪽에서 할머니 한 분이 오고 있으니 기다려도 되겠냐기에 다들 그러자고 했다. 마을은 정류장에서 이삼백 미터쯤 안쪽으로 쑥 들어간 곳이었고 거기에서 허리가 심하게 굽은 노부인 한 분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노부인은 좀처럼 버스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지 못했고 오 분쯤 지난 뒤에야 왜 그런지 알게 되었다. 노부인은 두 팔을 단거리 선수처럼 앞뒤로 흔들기는 했으나 두 다리는 아주 느릿느릿 떼었던 거다. 멀리서 보기에는 마구 달려오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오 분이 지나 숨을 헐떡이며 버스에 오른 노부인은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잠시나마 마음속에 짜증이 치솟기도 했던 스스로가 열없어서 나야말로 그이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두 팔을 힘차게 흔들던 그이가 오래오래 내 가슴에 남아 사람과 세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매번 일깨워줄 것임을 알아서였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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