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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中 동북공정 재시도하나… “광개토대왕비는 중화민족 비석”

바람아님 2017. 7. 11. 08:44

동아일보 2017-07-10 03:00


지안 고구려 유적 안내판에 5개 언어로 노골적 명기

중국이 지린성 지안시 ‘고구려 문화재 유적 관광지’ 안의 광개토대왕비. 지안=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중국 정부가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의 고구려 문화재 유적 안내판에 “광개토대왕비는 중화민족의 비석”이라고 최근 새로 기술한 사실이 본보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여기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떨쳐 온 중화민족 비석 예술의 진품으로 불리우는 ‘해동제일 고대 비석’ 즉 호태왕비(好太王碑)가 있고….”

동아일보가 동북아역사재단과 3∼6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현과 지안시 일대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한 결과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등이 있는 지안시의 ‘고구려 문화재 유적 관광지’ 안내판에 중국어, 영어, 한국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이같이 해설해 놓은 사실이 5일 확인됐다.

중국이 지린성 지안시 ‘고구려 문화재 유적 관광지’ 안내판에 광개토대왕비를 ‘중화민족의 비석’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안내판에는 “…중화민족 비석 예술의 진품으로 불리는 ‘해동제일 고대 비석’, 즉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 쓰였다.두번째 사진은 흰색 실선의 내용이다. 지안=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007년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종료된 뒤에도 고구려사가 자국사라는 중국 측의 역사 인식은 박물관과 유적지 등에서 간간이 확인돼 왔지만 이번에 발견된 문구는 더욱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돼 심각성이 작지 않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조사해 온 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본보를 통해 안내판 사진을 확인하고 “그간 유물 설명 등에서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취지의 서술이 가끔 발견됐지만 이번 표현은 고구려인이 중화민족에 속한다고 대중에게 명료하게 제시하면서 고구려사의 자국사 편입을 강력하게 재천명하고 있어 좌시할 수 없는 문제”고 강조했다.

중국은 2004년 우다웨이(武大偉) 당시 외교부 부부장이 방한해 ‘중앙·지방정부 차원에서 교과서 등에 역사 왜곡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한국 당국과 구두 합의했다. 이후에는 전시 기법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자국의 입장을 표출했고 최근 중국 연호에 따라 고구려 등의 사료를 정리한 사서를 발간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갈등의 표면화는 회피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문구에서는 그런 방침의 변화가 감지된다. 조 교수는 “최근 한중관계 경색과 관계가 있을 수 있어 향후 이런 서술이 확대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발견된 안내판은 최근 1년 안팎 사이에 새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는 장군총 아래 주차장 정면으로 개별 유적이 아니라 고구려 유적지 전체를 설명하는 안내판이다. 조 교수는 지난해 봄 현지답사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저탄소시범관광지 같은 최신의 개념이 설명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최근의 입장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관람객이 직접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중국) 직원의 설명을 통역해서 옮길 수만 있습니다.”

안내판뿐 아니다. 역사 문제에 대한 중국 측의 방침 변화는 유적 설명에서도 감지됐다. 지안시 박물관,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등에서 중국 직원들은 역사학 전공 교수 등으로 구성된 한국 탐방단과 가이드의 설명을 답사 중 번번이 가로막았다. 이 역시 지난해까지는 없던 일이다. 이유를 물었지만 ‘규정이다’ ‘지시다’ 같은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중국 직원의 설명에는 농기구부터 무기까지 “고구려는 중원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였다”는 말만 가득했다.

지안시 환도산성 아래 고분군이 정비 중인 모습을 기자가 울타리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자 현장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기자의 스마트폰을 강제로 빼앗았다가 항의를 받고 나서야 돌려주기도 했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중국의 유적지와 유물 관리 규칙 등이 정비되면서 동북공정의 역사 인식이 고착화되는 단계로 보인다”며 “최근 시진핑 주석의 발언 등으로 볼 때 겉보기와 달리 지방뿐 아니라 중앙 수뇌부의 역사 인식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지안·환런=조종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