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世說新語] [459] 오과지자 (五過之疵)

바람아님 2018. 3. 23. 07:51
조선일보 2018.03.22.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서경(書經)'의 '여형(呂刑)'에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살펴야 할 다섯 가지를 콕 집어 이렇게 얘기했다. "다섯 가지 과실의 잘못은 관(官)과 반(反)과 내(內)와 화(貨)와 래(來)에서 말미암는다. 그 죄가 똑같으니 살펴서 잘 처리하라(五過之疵, 惟官惟反惟內惟貨惟來, 其罪惟均, 其審克之)." 주(周)나라 때 목왕(穆王)이 한 말이다.


공정한 법 집행을 왜곡하는 다섯 가지 요인 중

첫째는 관(官)이다. 관의 위세에 눌려 법 집행에 눈치를 본다. 위의 생각이 저러하니 내가 어쩌겠는가 하며, 알아서 눈감아 준다.


둘째는 반(反)이니, 받은 대로 되갚아준다는 말이다. 법 집행을 핑계 삼아 은혜와 원한을 갚는 것이다. 내게 잘해준 사람의 잘못은 덮어주고, 미운 놈은 없는 죄도 뒤집어씌워 되갚아준다.


셋째 내(內)는 안의 청탁이다. 아녀자의 청탁 앞에 마음이 흔들려 냉정을 잃고 만다.


 넷째는 화(貨)이다. 뇌물을 받아먹고 속임수를 써서 죄 없는 사람을 얽어매고, 죄지은 자를 풀어준다.


다섯째는 래(來)이니, 찾아와 간청한다는 의미다. 이리저리 갖은 인연을 걸어 이권으로 희롱하고 권력으로 회유한다.


윤기(尹愭·1741~1826)가 '정상한화(井上閒話)'에서 이 말을 이렇게 부연했다. "오늘날 재판을 맡은 자들은 그저 이 다섯 가지를 마음의 기준으로 삼아 사실을 따져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소송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거와 벼슬도 다 똑같다. 과거를 주관하는 사람이나 관리를 뽑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대가 위세가 있으면 두려워하고, 뇌물을 주면 사랑하며, 여자가 찾아오면 사사로운 정에 끌리고, 청탁을 받으면 안면에 구애되며, 덕을 입었으면 갚을 생각을 하고, 원한이 있으면 해칠 궁리를 한다."


윤기가 다시 말한다. "이 다섯 가지 가운데서도 위세와 뇌물이 특히 심하다. 뇌물의 경우 위세보다 더욱 심하다. 이 때문에 또 '옥사를 맡은 자는 위세를 부린 자에게 그치지 말고 뇌물을 준 부자에게도 끝까지 법을 적용해야 한다(典獄非訖于威, 惟訖于富)'고 했다. 이는 부자에게 법을 끝까지 적용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다." 주나라 때 하던 걱정이 이제껏 이어지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