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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칼럼]제1야당, 제대로 변하고 싶다면

바람아님 2018. 6. 21. 20:03


동아일보 2018.06.21. 03:01

 

시장 통제하는 국가주의 경향은 보수나 진보정당이나 마찬가지
그나마 여당은 가치를 말하지만 야당의 빈정거림 국민은 싫다
역사흐름 읽고 정책역량 키워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명예교수
어느 보수 성향 지인의 말이, 경남지사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될까 걱정되어 밤새 개표방송을 지켜보았단다. 늘 보수정당 찍던 분이 왜 그러느냐 했더니 그 답이 이렇다. “거기서 이기면 이대로 어찌 해보겠다고 할 거야. 그 꼴을 또 봐.”

중간선거는 대개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평가가 된다. 그래서 중립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대거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정부여당이 아니라 주요 야당들, 특히 한국당이 심판대에 올랐다. 그 결과 중립적인 유권자는 물론, 상당수의 보수 성향 유권자가 야당을 심판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제1야당인 한국당을 두고 말하자면 지도부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와 소속 의원들의 무기력하고 이기적인 모습 등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점이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예로 들어보자. 싫든 좋든 역사는 다양성을 향해, 또 시장과 시민사회의 자율을 존중하는 쪽으로 흐른다. 정보기술 혁명이 시장과 시민사회의 역량을 끝없이 키우고 있고, 가상통화 문제에서 보듯 블록체인 기술 등은 정부와 은행 등 기존의 권위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획일성과 국가권력에 의한 일방적 억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 거대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집권당 시절 국민의 역사관까지 국가권력으로 통제하려 했다. ‘1948년 건국’ 등이 옳다고 믿으면 이를 논리로 다툴 일이지, 국정교과서로 이를 강제할 일이더냐. 또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이더냐. 그러고도 지금까지 이에 대한 올바른 성찰 한번 없었다. 국민의 눈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라는 이야기이다.


최근의 남북관계도 그렇다. 한국당이 매달려온 안보라는 가치도 결국은 평화를 위해 있는 것이다. 정부의 비핵화 노력에 문제가 있으면 그에 대한 진지한 대안을 내어 놓아야지, 이를 ‘평화 쇼’라 일축할 일은 아니었다. 군대 간 자식을 둔 부모나, 전쟁으로 삶의 기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고 한 말이었을까.

사실, 정부여당이라 하여 크게 나은 것도 없다. 시장과 시민사회의 자율을 존중하기보다는 국가권력을 통해 무엇을 해보겠다는 국가주의적 경향이 강하고,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는 대중영합주의적 성격도 짙다. 국가주의와 대중영합주의의 결합, 이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다만 한 가지. 인권, 평화, 상생, 환경 등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가치들을 이야기하고는 있다. 그 정도의 문제의식은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가치들을 실현시킬 정책적 역량이 있느냐. 꼭 그렇지는 않다. 최저임금 정책으로 고용과 상생의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데서 보듯 말이다. 많은 부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못 한다. 노조 등 지지세력의 이해관계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당을 비롯한 주요 야당들은 어떠냐? 보수적 대안이든 중도적 대안이든 대안을 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에 대해 빈정거린다. 인권을 이야기하면 ‘안보’가 어쩌고 하고, 상생을 이야기하면 ‘성장’ 운운한다. 왜 이 가치들이 같이 가지 못한다는 말인가.

국민 입장에서는 이 빈정거림이 싫다. 정부여당의 잘못된 국정운영 프레임과 정책적 무능보다 더 싫고, 그래서 더 먼저, 더 크게 보인다. 결국 이 빈정거림이 정부여당의 잘못을 가려주는 가림막이 되어 준다. 한국당과 그 대표가 없으면 대통령과 여당이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빠지게 된다는 조크도 그래서 나온다.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야당은 물론이고, 그 가림막 뒤에 안주할 정부여당까지 실패한다. 결국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 야당의 변화에 온 국민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인적 쇄신’ ‘당 조직 개편’ ‘당 해체’ 등 변화를 위한 방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흐름을 반영하는 새로운 깃발과 기치를 세우고 그에 상응하는 정책 역량을 기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단언컨대 이것 없이는 백약이 무효가 될 것이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