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世說新語] [474] 천상다사(天上多事)

바람아님 2018. 7. 6. 07:50
조선일보 2018.07.05.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진계유(陳繼儒)는 최고의 편집자였다. 당나라 때 태상은자(太上隱者)란 이가 적어두었다는 옛 신선들의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를 모아 '향안독(香案牘)'이란 책을 엮었다. 꿉꿉한 장마철에 싱겁게 읽기 딱 좋아 몇 가지 소개한다.

백석생(白石生)이란 이는 신선의 양식이라 하는 백석(白石)을 구워 먹고 살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천상으로 올라가지 않는 겁니까?" 그가 웃으며 말했다. "천상에는 옥황상제 받드는 일이 너무 많아 인간 세상보다 더 힘들어요." 당시에 사람들이 그를 은둔선인(隱遁仙人)이라 불렀다.


황안(黃安)은 너비가 석 자쯤 되는 신령스러운 거북 등에 앉아 있었다. 이동할 때는 거북을 등에 지고 갔다. 그가 말했다. "복희씨(伏羲氏)가 처음 그물을 만들어 잡은 거북이인데 내게 주었지요. 하도 앉아 등도 이미 평평해졌어요. 이 거북은 햇빛과 달빛을 두려워해서 3000년에 한 번만 머리를 내밉니다. 내가 여기 앉은 이래로 그가 머리 내민 것을 다섯 번 보았소."

섭정(涉正)은 20년간 눈을 감고 살았다. 제자가 눈을 한 번만 떠보시라고 간절히 청하자, 섭정이 눈을 떴는데, 우레 소리가 나고 섬광이 번개 불빛 같았다. 그러더니 그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회남왕 유안(劉安)이 태청선백(太淸仙伯)을 뵈었는데, 태도가 공손치 않다면서 유안을 귀양 보내 하늘나라 화장실을 지키게 했다.

조병(趙丙)이 배를 타고 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는 물을 따라 술로 만들더니, 노 하나를 깎자 육포(肉脯)가 되었다. 둘이 함께 취하도록 마시고 배불리 먹었다.


72인의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밑도 끝도 없이 열거된다. 대낮에도 그림자가 없었다는 현곡(玄谷), 귀의 길이가 7촌에 이빨은 하나도 없었다는 완구(阮丘), 술 취해 바위에 먹물을 뿌리면 모두 복사꽃으로 피어났다는 안기생(安期生) 같은 이도 있다. 천상에는 일이 많으니 그냥 이렇게 살겠다던 은둔선인부터, 강물 떠서 술 마시고 노를 깎아 안주로 먹던 조병까지, 심란하던 시절 진계유가 꿈꾸었던 그들과 만나 한나절 잘 놀았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