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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市場은 민주주의의 敵이 아니다

바람아님 2018. 8. 31. 17:03

(조선일보 2018.08.31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국가 차원의 가짜 통계는 舊소련처럼 나라 망쳐
正義 구현 내세운 경제정책, 시장에선 왜 작동 안 할까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통계청장 전격 교체로 문재인 정부가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통계청 자료들은 현 정부 경제정책의 실패를 보여준다. 소득분배와 고용이 다 나빠졌다.

통계청 공무원 노조는 성명서에서

"'좋지 않은 상황을 좋지 않다'고 투명하게 공표"한 통계청장을 경질한 정부 조치에 강력히 항의했다.

"통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조치"라는 것이 노조의 항변이다.

이번 사태의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 전문가가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한 게 대통령에 대한 불경죄가 될 수도 있다는

충격적 메시지를 공무원 사회에 던졌기 때문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에선 허위가 판치게 된다.

가 통계는 국정 운영의 객관적 지표인데 공산국가나 후진국일수록 통계 조작이 만연했다.

구(舊)소련의 국가경제계획위원회인 고스플란(Gosplan)이 전형적인 사례다.

소련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1928~1985년까지 소련 경제는 연평균 9% 성장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최장기 고속성장 세계기록 보유국인 중국과 한국을 넘어선 경이적 성취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소련 붕괴 자체가 이 통계의 허위를 입증한다.

국가 차원의 가짜 통계는 나라를 망친다.


통계청장 경질 사태는 단순한 인사 파동이 아니다.

시장(市場)을 적대시하는 문재인 정부의 이념 편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정의로운 민주 정부가 정의롭지 못한 시장을 바로잡는다'는 이분법적 결기로 가득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만들기를 앞세워 소득 주도 성장을 신성시한다.

치명적인 문제는 정의 구현을 표방한 경제정책이 실제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약자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론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을 때 위정자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꿈을 현실에 맞게끔 수정하는 열린 리더십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지향한다.

반면에 자신의 이상을 성역시함으로써 이념이 재앙을 불러올 때조차 잘못을 부인하는 통치자도 있다.

좋지 않은 경제 상황을 좋지 않다고 발표한 통계청장이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이유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무리한 이념으로 사실을 은폐하는 시도는 지속하기 어렵다.

민중의 삶에 뿌리내리지 않은 경제 이념은 아무리 진보적인 것일지라도 폐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 가격을 형성하는 장소'이자 '교환이 일어나는 상황'인 시장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거나

공정한 것만은 아니다. 서울 주택 시장처럼 약육강식의 투기판으로 전락할 때도 있다.

극단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장 실패 상황엔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시장은 부단한 혁신과 창조적 파괴로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창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장이 있어야 법치주의와 사회적 신뢰가 만들어진다.

자유시장은 성찰적 시민사회의 등장을 앞당겨 국가의 독주를 막는 소중한 존재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세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정의감으로 충만하다.

장 실장은 고장 난 한국 자본주의를 고치는 힘이 시장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시장과 민주주의를

상호 적대 관계로 본다. 이는 현 정부가 시장에 방만하게 개입하는 이념적 근거다.

하지만 시장과 민주주의의 이항 대립 논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장의 기여를 간과한 채 자생적 복잡계인

시장의 동역학을 경시한다.


시장의 핵심인 '가격'의 역할을 무시한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은 사회적 약자(弱者)를 최대 희생양으로 만든다.

이처럼 정의를 앞세우는 국가가 항상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다.

'특정 영토에서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시장과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침탈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때로 베네수엘라 같은 총체적 국가 실패를 초래해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트린다.


문재인 정부의 확신과는 달리 시장과 민주주의는 역동적 긴장 관계 속에서 동행한다.

시장은 결코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다. 자유시장을 적대시하는 소득 주도 성장은 틀렸다.

재벌 개혁도 필요하고 재분배도 시급하지만 허황된 독단론이 민생고를 가중시키는 지금의 상황은 명백한 정책 실패다.

통제경제와 다른 자유시장의 장점은 실패에서 배워 정책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 생태계를 교란하는 소득주도성장이 서민 경제를 초토화하는 현실을 정의의 이름으로 변명할 순 없다.

민초들이 내지르는 고통의 절규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그게 바로 지도자의 진정한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