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00] 그림으로만도 끔찍한 것, 전쟁

바람아님 2013. 11. 29. 12:26

(출처-조선일보 2013.03.31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나무에 목을 매달아 사람을 죽였다. 그 발치에 앉은 군인이 천연덕스럽게 시체를 바라본다. 잘 만들어진 미술품을 감상하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이는 스페인 최고의 궁정화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1746~1828)가 1810년에서 20년 사이에 제작한 판화 앨범, '전쟁의 참화' 중 한 장면이다. 82점의 판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고야는 전쟁이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물론 과거에도 전쟁을 그린 그림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실제로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참혹한 전쟁의 실체를 묘사한 건 고야가 처음이다.

프란시스코 고야, 궨전쟁의 참화궩 중 36번 판화 - 1812~1815년, 에칭과 아쿠아틴트, 15.8×20㎝. /스페인 국립도서관 소장
프란시스코 고야, 궨전쟁의 참화궩 중 36번 판화 - 1812~1815년, 
에칭과 아쿠아틴트, 15.8×20㎝. /스페인 국립도서관 소장
고야는 혼돈의 역사 한가운데에 있었다. 1807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무력(武力)과 온갖 정치적 술수를 총동원해 스페인 왕가로 하여금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고,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왕위에 앉혔다. 이후 독립을 위한 스페인 반군과 시민의 산발적인 게릴라전이 6년 동안 계속됐다. 고야는 처음에는 점령군에 반기를 든 스페인 민중의 영웅적인 행적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목격한 전장에서는 프랑스인이나 스페인인이나 결국 별 차이 없이 광기와 공포에 눈이 먼 채 극도의 폭력과 잔인한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이었다.

그는 시체에 난도질을 해대는 사람들, 기아 속에 허덕이는 아이들,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반복해서 그렸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이성을 잃었을 때 할 수 있는 일, 증오와 복수심이 세상을 지배할 때 발생하는 일들이다. 물론 '전쟁의 참화'는 고야의 생전에는 출판될 수 없었고, 그의 사후 35년이 지난 후에야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림으로만 봐도 끔찍한 것, 그것이 전쟁이다.


Goya y Lucientes, Francisco de (1746-1828)    Here  Nei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