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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왜 名畵인가] [5] 김환기의 '피란열차'

바람아님 2013. 11. 30. 21:03

(출처=조선일보 2013.11.27 박명자·갤러리현대 회장)

빽빽한 희망이 달린다

김환기(金煥基·1913~1974)의 '피란 열차' 속에 바로 내가 있다. 6·25가 나던 해 겨울 폭격이 쏟아지자 어머니와 나, 세 동생은 화물차 위에 겨우 탔다. 사람이 너무 많아 자칫하면 떨어질 것 같았다. 에는 듯한 추위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나마 수원서 차가 멈춰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수원 외가에서 불청객으로 1년 가까이 지냈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그때의 상황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화면의 밀도감, 김환기 특유의 진한 청색, 붉은 땅의 색깔에 매료돼 가슴이 벅찼다. 6·25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일곱 살. 잊고 있었던 까마득한 기억이 이 한 점 그림에서 생생하게 떠오르다니….

김환기의 1951년작 ‘피란열차’ 작품 사진
                                  김환기의 1951년작 ‘피란열차’. 가로 53㎝, 세로 37㎝ /개인소장

목숨을 화물차에 맡기고 한 치 앞의 운명도 알 수 없이 달리던 절박한 상황을 화가는 어쩌면 이렇게 절제된 선과 강렬한 색상으로, 그리고 해학을 담아 독창적으로 그렸을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그림은 '피란 열차'라기보다는 '희망 열차'로 보인다. '희망 열차'에 탄 사람들은 당당하고 힘차 보인다. '희망의 나라'로 바퀴가 굴러간다. 위대한 예술가의 창의성이 죽음의 위기를 앞둔 인간의 상황마저 바꿔놓은 것이다. 평론가들이 이야기하는 '예술성, 창의성, 시대성'을 이 그림은 모두 갖췄다. 나는 김환기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특히 이 작품이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 중 가장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명화 중의 명화'라고 생각한다. 6·25 이후 60여년의 세월에 격세지감을 느끼며, 수없는 풍랑 속에서도 급성장해 온 우리 국민의 위대함에 감사하며, 매일 아침 '감사합니다'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니까.




참조 - 김환기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 ②<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