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김정운의 麗水漫漫] 누가 방울토마토를 두려워하랴

바람아님 2019. 1. 30. 11:05

(조선일보 2019.01.30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


여러 감각 교차하는 정서적 경험이 풍요로울 때 창조적 사회도 가능
분노·적개심 대신 경험의 공유 고민을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
 
지난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바우하우스(Bauhaus)'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에 다녀왔다.

독일에 갈 때마다 나는 자주 독일인들과 싸운다.

오래 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동양인 비하의 교묘함 때문이다.

입국장부터 시작된 '나의 투쟁'은 출국할 때까지 계속된다.

이번에는 절대 분노하지 않기로 맘을 단단히 먹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기억과 관련해 '정점-종점 규칙(peak-end rule)'을 주장한다.

지난 일을 평가할 때 '가장 좋았던 일(peak)'과 '가장 마지막(end)'이 그 경험 내용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면 '정점'과 '종점'을 제외한 일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이 행복하려면 마지막 순간에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할 때 느닷없는 청구액에 놀라지 않을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유럽 공항에서 쇼핑한 물건의 세금을 돌려받는 일도 되도록 피해야 한다. 단 한 번도 기분 좋았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책만 샀다. 이번 여행은 큰 소리 한 번도 안 내고 잘 끝냈다.

비행기 탈 때까지 상냥한 표정으로 먼저 웃었다. '종점'은 완벽했다.


이번 여행의 '정점'은 독일의 슈뢰더 전 총리를 만나 식사한 일이다.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녹색당의 요슈카 피셔는 1990년대 내 유학 생활의 영웅이었다.

독일 의회에서 젊은 그들이 연설하면 나는 넋을 놓고 봤다. 엄청났다.

두 사람은 팀을 이뤄 노쇠한 헬무트 콜의 장기 집권을 끝냈다. 두 사람은 결혼도 경쟁하듯 여러 번 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최근 한국인과 결혼했다.

베를린 칸트슈트라세의 오래된 식당에 아내와 함께 나타난 그는 너무 행복해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라며 잠시도 손을 놓지 않았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결혼 3번'은 기본이라고 했더니 그는 재혼인 아내에게 한 번 기회가 더 있는 거냐며

불안하게 웃었다.


‘상식(common sense)은 공통 감각(sensus communis)에서

나온다!’ /그림=김정운
 

실제 그렇다. 한번 하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야 하는

결혼 제도는 평균 수명이 채 40세도 안 될 때 만들어진 거다.

100년도 넘게 살아야 하는 미래에는 단 한 번 결혼해서

70~80년을 함께 사는 부부는 '천연기념물'이 될 확률이 높다.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결혼, 이혼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동거'가 보편화된다. 유럽의 많은 나라가 '동거 커플'을

'결혼한 부부'처럼 제도적으로 보장해준다.

'저출산 대책'은 이런 총체적 사회문화적 변동을 고려해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100세 시대에는 '결혼 10년 단임제'도

훌륭한 대안이다. 결혼하면 그 파트너하고 딱 10년만 사는 거다.

정말 사랑하면 단 한 번만 연장할 수 있다. 크, 여럿 행복해질

것 같다.)

식당을 나서며 슈뢰더 전 총리는 내게 그 '귀족적인(!) 마스크'로

어찌 결혼을 딱 한 번만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졸리다리테트

(Solidarität)'라고 했다. '연대' 혹은 '의리'라는 뜻이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정점'은 '감각'과 관련된

바우하우스 철학의 재발견이었다. 1919년에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불과 14년 만에 나치의 탄압으로 문을 닫았다.

그러나 모더니즘 건축, 산업 디자인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바우하우스 철학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삶과도 아주 구체적 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식 아파트'야말로 바우하우스 건축의 가장 효율적 활용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미학적 응용이기도 하다.


바우하우스 철학의 핵심은 '공감각(共感覺·synesthesia)'이었다.

'공감각'이란 감각이 서로 교차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그림을 보면서 음악을 느끼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색채를

보는 것과 같은 감각의 교차적 경험이다.

바우하우스에서는 수공업 장인들의 '촉각'을 기초 교육과정에 포함했다.

온갖 조형 재료의 성질을 직접 손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독일 디자인의 독특한 재질감은 바로 이런 '시각과 촉각의 창조적 편집'이라는 바우하우스의 전통에서 나온다.

바우하우스 선생이었던 칸딘스키나 클레는 음악의 청각적 경험을 2차원의 시각적 평면에 구현하려 했다.

바우하우스가 지향한 건축이란 이런 감각적 경험의 종합이었다.


감각적 경험의 교차 편집이 일어나고, 공유할 수 있는 정서적 경험이 풍요로운 사회가 창조적 사회다.

'상식(common sense)'은 라틴어의 '공통 감각(sensus communis)'에서 파생한 단어다.

특정 감각만이 절대화되면 '상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다. 소통 불가능해진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신문과 방송, 혹은 유튜브나 팟캐스트 따위로 감각적 기반이 전혀 달라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분노, 적개심을 야기하는 파괴적 정서가 아니라, 공유하며 교차되는 공통 감각적

경험을 아주 치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문화예술 정책은 그런 걸 하는 거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그렇게만 가능하다.

100년 전의 바우하우스가 우리에게 주는 통찰이다.


끝으로 아주 개인적인 공감각적 경험 하나. 나는 방울토마토가 싫다.

입안에서 겉돌며 잘 씹히지 않는 물리적 느낌이 불편하다.

억지로 잡아 씹으면 느닷없이 터지는 입안의 그 느낌에 긴장까지 한다.

마누라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져도 바로 긴장하는 요즘인데 방울토마토 따위에 그럴 까닭이 전혀 없다.

방울토마토는 아무리 작아도 잘라 먹어야 한다.

입안에 들어올 때부터 토마토 속의 산뜻함을 느낄 수 있어야 맛있다. 내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