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가 압도적인 환호 속에 끝났다. 앙코르곡만 남은 상황에서 그가 청중을 향해 말했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한국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지만, 저는 여기에서 여러분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 옳은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아버지는 제가 오늘 밤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노래하는 것을 하늘에서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밤 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음악회를 제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그때서야 청중은 그가 아버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노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앙코르곡은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였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마리아님, 소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로 시작하는 독일어 원곡으로 불렀고, 다음에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으로 시작하는 라틴어 기도문으로 불렀다. 가톨릭교회의 ‘성모송’에 해당되는 라틴어 가사의 호소력은 압권이었다. 그리고 목소리 자체가 이미 애원이고 기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애조를 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개인적인 슬픔으로 말미암아 감정의 깊이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바람대로 아버지를 위한 기도가 되었다. 그의 목소리에 깃든 간절함이 청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10여 분에 걸쳐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기도하듯 손을 맞잡고 돌아서서 눈가를 살짝 훔쳤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반주자의 옆얼굴에 잠깐, 정말로 잠깐 이마를 기댔다. 애처로운 절제의 몸짓이었다.
청중은 그를 위로하고 그의 애도에 동참하고 있었다. 기립 박수는 그런 의미였다. 그들도 사랑하는 부모를 잃었거나 언젠가는 잃게 될 터였다. 그래서 그의 슬픔은 그들의 슬픔이기도 했다. 2006년 파리에서 아베 마리아를 그토록 애절하게 불렀던 사람은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였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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