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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항의인문학산책] 철학하는 바이올린

바람아님 2019. 2. 24. 08:14

세계일보 2019.02.22. 23:10

 

장애 극복한 바이올린 거장 펄만 /
당신을 꿈꾸게 하는 어떤 것이 있나

최근 한 방송국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방영했다. 25년이나 된 영화였으나 다시 봐도 좋은 영화였다.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테마곡의 여운은 자막이 올라가도록 화면을 끄지 못하게 만들었다. 겨울날의 햇살처럼 오래오래 즐기고 싶은 그 바이올린을 켠 이는 이차크 펄만이었다.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펄만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이올린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거라고. 와인처럼, 사랑처럼 취하게 하는 그의 바이올린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이라는 다큐영화를 보니 유대인으로, 장애인으로 그가 얼마나 서럽고 험난한 세월을 잘 건너왔는지 알 것만 같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바이올린 천재였다. 그렇게 바이올린을 잘 켜는데, 그럼에도 장애인이어서 안 된다는 수군거림이 따라다녔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럴 때마다 바이올린에 기대 그 슬픔과 억울함을 달래야 했으니 정말로 바닥없는 심연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주항 수원대 교수·철학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외면하지 않는가 보다. 그를 장애인이 아니라 천재적 재능을 가진 소년으로 알아본 스승을 만난 것이다. 뉴욕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였다. 거기서 그는 또 지금껏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인을 만났다. 펄만과 함께 음악을 했던 여인, 무조건 그를 사랑하다 그의 아내가 된 여인, 토비다. 남편의 연주를 들으면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는 그 여인. “살아보면 많은 게 운이에요.” 토비의 말이다. 스스로 운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그 말을 들을 때는 좌절에 절망을 더할 수도 있지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생을 성취한 사람이 ‘운’을 운운할 때 거기엔 ‘겸손’이 있다. 내가 잘나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이 이룬 것의 어떤 부분은 돌려줄 수 있다는 것.
        

펄만과 부인 토비는 음악을 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스쿨을 연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주는 봉사처럼 느껴지는데, 그들의 생각은 다르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란다. 소통의 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음악 하는 사람이면 한번쯤 경험하고 싶은 ‘펄만 음악 프로그램’에 대해 묻자 펄만은 이렇게 말한다. “음악은 그저 핑계고, 삶에 관한 거”라고. 그들에게 음악은 직업을 떠나 삶이고, 철학이고, 아름다움이다. 펄만이 학생들에게 묻는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지요. 누군가가 음정이 악한 틀렸습니다. 직접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되는데, 그럼 어떻게 알려주면 좋을까요.” 어떻게 하면 거만하지 않게, 틀린 사람이 상처받지 않게 알려줄 수 있을까, 그런 물음을 품을 줄 아는 자는 정말 좋은 스승이 아닌가. 그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최고의 인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토비의 말이 재미있다. 모두들 최고의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해하는데 그런 것은 없다고. 아이들은 모두 다른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이란다.


음악 인생이 그들에게 인도하는 길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거기 나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협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펄만이 말한다.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는 관계라고. 아르헤리치의 바흐를 들었을 때 그 소리에 맞춰 소나타를 연주하고 싶었다고. 음악이 말을 걸면 응답한다는 펄만, 음악으로 우리를 꿈꾸게 하는 펄만이 ‘나’의 꿈을 돌보게 만든다. 어찌 음악만 우리를 꿈꾸게 하겠는가.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어떤 것이 우리를 꿈꾸게 하는 것일 것이다. 당신은 꿈꾸게 하는 어떤 것을 가졌는지.


꿈은 어디에서 올까. 꿈도 눈치가 빤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생의 목표가 된 사람에게는 찾아가지 않는다. 먹고사는 일 너머 혹은 이전에서 뭔가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가 그 사람에게 말을 건다. 마치 호기심 많은 친구처럼 그를 건드려 그 안에 있는 고유한 그를 깨우는 것이다. 이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든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생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주항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