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02.20. 03:01
2015년 1월 서울에서 예술품 경매가 있었다. 경매에 나온 품목 중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두 점의 그림이 있었다. 동학 1대 교주인 수운(水雲) 최제우, 2대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의 최후를 그린 그림들이었다. 수운은 1864년 대구에서, 해월은 1898년 서울에서 처형을 당했다. 두 그림 중 하나는 수운의 목이 잘려 피가 낭자한 순간을, 다른 하나는 해월이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치욕스럽게도, 두 점 모두 시미즈 도운(淸水東雲)이라는 일본인 화가가 그렸다.
화가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좌편 하단 구석에 ‘44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메이지 유신 44년, 즉 1911년에 그렸다는 의미다. 조선이 이미 국권을 잃은 뒤였다. 그러나 조선은 그 이전에도 일본의 손아귀에 있었다. 특히 해월의 최후를 그린 그림은 이것을 명확하게 증언한다. 처형을 주재하는 두 명의 조선 관리와 세 명의 일본 군인. 조선 관리는 부채를 들고 있고 일본 군인은 허리에 긴 칼을 차고 있다. 시미즈 도운의 그림이 그의 말대로 다른 사람의 그림을 ‘다시 그린(再寫)’ 것이라면, 1898년의 형장 모습은 실제로 그랬을지 모른다. 해월의 죽음은 칼을 찬 일본인과 부채를 든 조선인이 대변하는 무리들이 공모하고 합작한 결과였다. 그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월의 정신마저 죽일 수는 없었다.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숭고한 생명사상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그는 감옥에서도 인간을 하늘로 보고 받들었다.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지인에게 이런 전갈을 보냈다. “돈 50냥만 있으면 요긴하게 쓸 일이 있으니 변통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그 50냥으로 떡을 사 배고픔에 시달리는 죄수들에게 나눠주었다. 그에게는 그 죄수들이 하늘이었다. 타인의 고통과 생명을 먹고 사는 제국, 그 제국의 화가가 포착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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