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02.26. 03:02
독일은 전통적으로 육군의 나라였다. 1871년 프러시아가 독일을 통일하고 독일 제국을 선포한 뒤 세계로 팽창하려고 하자 비로소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불리한 점이 많았다. 일단 대서양으로 나가는 출구가 위험했다. 도버해협은 세계 최강인 영국 해군이 막고 있었다. 북해로 나가 영국과 노르웨이를 통과해 영국 북쪽을 돌아 나가야 한다. 북해는 세계에서 제일 거칠다. 북대서양에서 영국, 미국 해군과 교전을 벌인다고 했을 때 전투로 손상을 입은 배가 기지로 귀환하려면 다시 영국 북쪽을 돌아와야 한다. 이런 입지에서는 해군 전력이 맞먹는다 해도 승리하기 힘들다. 영국 해군과 맞먹는 전력을 갖춘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였다.
이렇게 완벽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탈출구를 찾은 사람이 카를 되니츠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 함장으로 참전했던 그는 독일의 불리한 지리적 입지를 극복하고 영국 해군과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잠수함(유보트) 전술’뿐이라고 확신했다.
잠수함은 수상함보다 영국의 해양 봉쇄선을 쉽게 뚫을 수 있다. 그렇게 바다로 빠져나간 잠수함은 영국 전투함과 맞상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에 보급품을 수송해 오는 상선단을 공격한다.
영국의 최대 장점은 해양국이라는 것이지만 그것이 약점이었다. 식량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자재를 수입에 의존했다. 수송선단이 바다에서 고갈되면 영국은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이를 예상한 그는 치명적인 선단공격 전술을 고안했고 훈련시켰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의 유보트 함대는 영국에는 공포와 악몽이 되었다. 전쟁의 승패를 바꿀 뻔했다.
독일이 패전하자 그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됐다. 전쟁 전에 구상한 잠수함 전술이 그를 히틀러와 같은 침략자로 모는 증거로 제출됐기 때문이었다. 되니츠는 주변국을 대상으로 전쟁 상황을 가정하고, 전술을 수립하는 것은 모든 국가에서 군인의 의무라고 항변했다. 법정은 이 부문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요즘 우리는 어떤가? 명분과 신념이 만약의 사태를 가정하는 것까지 구속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만약 그렇다면 이건 나라가 아니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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