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06.13. 03:02
중국 공산체제 압박하는 트럼프는 '제2의 레이건'으로 기록될 수도
인권·자유·법치 억압하는 전체주의.. 체제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미국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기억되지만 당시 레이건은 미국 주류세력에 그리 존경받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B급 배우 출신다운 쇼맨십과 ‘악의 제국’ 같은 거친 레토릭 때문에 미국의 최악을 상징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베를린장벽 연설 2년 후 정말 장벽은 무너졌다. 1991년 말엔 소련이 붕괴했다. 서유럽으로 가는 가스관 건설을 막아 소련 경제에 타격을 주고, 핵무기 방어체계(SDI) 구축 등 공산체제의 능력을 넘는 군비경쟁을 벌여 악의 제국 궤멸전략을 성공시킨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레이건처럼 요란하고 거친 언동으로 미국 엘리트사회의 조롱을 받는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이 세계경제를, 특히 우리 경제를 얼어붙게 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하지만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전방위 압박은 과거 미국발(發) 무역전쟁과 차원이 다르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레이건이 감세와 탈규제 등 레이거노믹스로 경제를 살리면서 소련을 압박해 붕괴시켰듯, 전체주의 독재국가 중국을 주저앉히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세계전략으로 보인다. 어쩌면 ‘제2의 레이건’으로 역사에 남을 수도 있다.
전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2013년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장한 ‘신형대국관계’를 받아들임으로써 사실상 미국의 패권을 양보한 신사였다. 트럼프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시행되는 곳엔 고통과 파괴가 뒤따른다”고 연설할 만큼 사회주의를 혐오한다. 미국이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는 중국을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저해하는 수정세력으로 규정하고, 강제수단을 동원해 주변 국가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활동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굴기(崛起)를 막기 위해 미국의 과학기술이 중국에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고, 세계의 제조업을 끌어들여 미국경제는 살리는 것이 트럼포노믹스다. 미중 무역협상에서 미국 요구의 핵심은 중국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중단이다. 국영기업은 공산당 정치경제적 이권의 결정체이므로 중국 공산체제를 해체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시진핑은 작년 12월 개혁개방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중국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개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경제성장이 민주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자유세계의 믿음을 배반했다.
관세폭탄은 시작에 불과하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미국이 환율전쟁으로 들어가면 중국은 버텨내기 어려울지 모른다. 중국 왕조의 평균수명이 70년이다. 1987년 말 미소(美蘇)가 합의한 중거리핵전력폐기(INF)조약도 트럼프는 작년에 파기했다. 건국 70주년인 중국과 군비 경쟁을 벌이며 경제적 압박을 병행하는 레이건식 붕괴 전략을 펼칠 태세다.
지금 두 주요국가(G2)는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고, 누가 이기든 새우등 터질까만 우려한다면 한가하다. 중국은 부패 척결을 빌미로 누구든 잡아 가둘 수 있는 일당독재 전체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문명 간 충돌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인권과 자유, 법치를 외면하는 나라를 유교문명으로 존중할 순 없다. 공존은 불가피해도, 인간을 억누르는 전체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응전에서 우리가 서야 할 곳은 자명하다.
“냉전 초기 소련의 파워가 커질 때 주변 독재국가가 증가하고 소련 궤멸 뒤에 감소했듯이 이제는 중국이 세계에 권위주의를 퍼뜨리고 있다”고 작년 10월 미국의 포린어페어스지는 지적했다. 청와대 운동권 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한 것도 모자라 내년 총선에서 입법부까지 장악하기 위해 선거법 개정을 몰아가는 것도 중국의 영향이 아닌지 두렵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인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노르웨이에서 ‘평화는 힘이 아니라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을 인용해 대화 의지를 역설했다. 평화, 좋다. 그러나 김정은의 북핵도 이해하고 시진핑의 중국몽도 신뢰하는 자칭 ‘작은 나라’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자유는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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