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55] 우산과 촛불

바람아님 2019. 6. 19. 07:57

조선일보 2019.06.18. 03:10

 

녠 정 '상하이에서의 삶과 죽음'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라는 것을 그리도 자랑스러워하는 문재인 정부는 이상하게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민중 시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것 같다. 한 언론이 요즘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평화적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를 폭동이라 불렀다고 하고, 세계 여러 도시에서 동조 시위가 일어났고 국가들도 지지 성명을 발표했지만 우리 정부는 냉담하기만 한데, 촛불이 우산에 밀릴까 봐 그럴까?

19세기 중엽에 중국이 홍콩을 영국에 할양했을 때 홍콩은 초라한 어촌이었다고 한다. 강대국이 강제 조차(租借)하는 것은 옳지 못하나 오늘의 홍콩이 비할 바 없이 풍요롭고 화려하고 활력이 흘러넘치는 도시가 된 것은 그동안 홍콩이 누렸던 '자유'의 산물임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런데 '1국 2체제'를 보장하겠다던 중국이 홍콩을 공산화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고 홍콩 시민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송환법 없이도 지난 수년 간 홍콩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중국 반체제 인사가 수십 명이고 송환법은 서곡일 뿐이니 넋 놓고 있다가는 티베트나 신장·위구르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홍콩 시민들은 '여기서 패하면 우리가 물러날 곳은 바다밖에 없다'고 외친다고 한다.

지난 16일에는 전날 시위하다가 추락사한 시민을 애도하는, 검은 옷을 입고 조화를 든 200만 인파가 홍콩 도로를 빽빽이 메웠다. 그런데 진압 경찰이 광동어가 아닌 북경어를 쓰고 태도나 진압 방식은 신사적인 홍콩 경찰식이 아닌 중국 공안의 방식이라고 한다.

1966년 서방의 대기업(셸 석유) 지사의 경영 고문으로서 홍위병의 표적이 되어 6년 반 동안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겁박과 고문·감금을 견뎌야 했던 녠 정은 회고록에서, 10대 홍위병들이 자기 집에 밀고 들어오려 해서 수색 영장 제시를 요구하니까 "헌법은 폐기되었다"면서 "우리는 위대한 모택동 주석의 가르침만을 인정한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우리는 주변의 화려한 고층 빌딩과 모든 문명 설비를 보면서 야만과 무법천지와는 영원히 결별한 줄 알지만, 한 발 헛디뎌서 야만의 늪으로 추락한 나라가 한둘인가? 세월이 수상하니 홍콩 사태가 강 건너 불 같지 않다. 어느 날 대한민국에 고려연방제가 선포되어 북한 비판 인사가 북쪽에 인도되는 일은 없을까? 우리도 홍콩 시민을 격려하는 국민적 성명이라도 발표했으면 좋겠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