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07.11. 03:02
나라와 국민에 충성해야 할 검찰
집권세력 무서워 수사 못 한다면 5년에 한 번이라도 正義 찾으라
여야 의원들이 돌아가며 “재직 중 변호사를 소개한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그런 사실 없다”고 하루 종일, 일관되게,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부인했던 윤석열이다. 명백한 거짓말이고 위증인데도 검찰은 물론이고 여권에서도 검찰 후배를 보호하는 의리 있는 사나이라며 미담처럼 보는 분위기다. 두 야당과 언론이 문제 삼아도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할 게 뻔한데 괜히 미운털 박히게 반대할 필요 있느냐는 냉소와 무기력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총장이면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는 국가 최고 법집행기관의 수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자기 직업에 ‘대한민국’을 붙여 “대한민국 검사”라고 자부하는 조직은 검찰이 거의 유일하다. 조폭도 검사 앞에선 무릎을 꿇고, 2007년 ‘변양균-신정아 사건’의 신정아도 “대한민국 검찰이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냐”는 윤석열의 호통에 앉은 채로 오줌을 싸고 말았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그렇게 대단한 검찰이, 다른 고위직도 아닌 검찰총장 후보자가 온 국민을 속였다. 검찰 내에선 장군, 그것도 주윤발 같은 성향으로 평가된다는 윤석열이 “변호사 선임(選任)되지 않았으니 소개가 아니다”라고, 주윤발은커녕 남자답지도 못한 변명을 했다. 국회 청문회라는 법과 질서를 우롱했는데도 검찰 조직을 위한 일이니 문제없다는 윤석열의 ‘조직 이기주의’는 조폭의 충성심과 뭐가 다른가. 청문회 다음 날 “후보자가 나를 보호하려 그랬다”며 나선 ‘아그’들의 의리 역시 완전 삼류 조폭 영화였다.
그러고 보면 윤석열의 불후의 명언도 2013년 국회 국감에서 정갑윤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조폭보다 못한 조직’이라고 질타하던 끝에 나왔다. 그때는 수사팀-법무부의 갈등과 이로 인한 신뢰 추락이 지적됐는데 이번 녹음파일에선 ‘검찰지상주의자 윤석열’의 편향된 시각이 노출돼 신뢰가 지하로 떨어지게 생겼다.
“분위기를 딱 보니까 아, 대진이(윤대진 현 검찰국장)가 이철규(전 경기지방경찰청장)를 집어넣었다고 얘들(경찰)이 지금 형(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을 건 거구나 하는 생각이 딱 스치더라고. … 내가, 중수부 연구관 하다가 막 나간 이남석(변호사)이 보고 일단 네가 대진이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대진이 한참 일하니까, 윤우진 서장 한번 만나봐라….”
경찰의 윤우진 내사를 윤석열은 검찰의 경찰 구속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 강경파를 대변해온 이철규는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무고한 시민 아니라 경찰도 감방에 보낼 수 있고(그러나 1∼3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윤우진은 검찰 동생 있으면 수뢰 혐의로 해외 도피했다 잡혀도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이렇게 제 식구의 식구까지 감싸는 검찰 조직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검경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논리다. 윤석열의 과잉 조직 사랑이 검경 수사권 조정의 빌미가 될 판이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 칼 찬 순사 같은 정보경찰들이 국민의 자유까지 탈탈 털게 된다면, 윤석열은 나라와 국민에 불충한 검찰총장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과거 정권에선 외압에 항명했던 그가 문재인 정부에선 100대 국정과제 1호 적폐청산 수사에 매진해 초고속 출세에 성공했다. 검찰 내에선 윤석열의 특수통 조직연(緣)이 공안과 기획라인까지 장악하고는 요직을 돌아가며 해먹는다는 불만이 부글거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석열은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면 못 참지만 망나니처럼 휘두르라는 하명 수사는 외압으로 치지도 않는 천생 칼잡이였던 셈이다.
조직의 특성상, 일단 맛본 권력의 속성상 윤석열이 국민에 충성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체질에 맞지 않는다면 검찰의 관행대로 집권세력의 비리를 차곡차곡 캐비닛 속에 쟁여 두고 있다 정권 말 사정없이 칼을 휘두르기 바란다. 정의(正義)가 5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더라도 영영 안 오는 것보다는 낫다. 대통령감으로 뜰지 누가 아는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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