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10.01. 14:00
별일이다. 대통령은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검찰권력을 통제하는 건 당연하다는 의미다. 폴란드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사법개혁을 강행 중인 집권당, 법과정의당(PiS)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의기관에는 과거 기득권 엘리트에 복무했던 부패한 사법기관을 해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이자 실세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헌법에 나오는 균형과 견제 제도 때문에 ‘국가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며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국가 의지를 ‘촛불 민심’으로 바꾸면 우리도 많이 듣던 얘기다.
유럽연합(EU)은 이런 폴란드의 사법개혁이 삼권분립과 법치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건 지난번 ‘도발’에 썼다. 독자들 중에는 왜 별로 대단치도 않은 폴란드와 비교해 억지 글을 쓰느냐는 분도 있었는데 정말이지 그런 분들께 묻고 싶다. 그럼 왜 당신의 대통령은 별로 대단치도 않은 나라와 혈세 써가며 정상회담을 했느냐고. 그리고 왜 하필 세계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나라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를 따라가느냐고.
● 댓글 급해도 세줄 요약까진 봐 주세요
나날이 민주주의의 새 경지를 보여주는 대통령 덕분에 폴란드까지 훑어보게 됐으니 고맙기 짝이 없긴 하다. 디지털로 글 읽는 분들, 몇 줄 안 보고 휘리릭 내려가 냅다 악플부터 다는 독자들, 아무리 급하더라도 세 줄 요약까지는 봐주셨으면 한다.
① 폴란드와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현실로 인해 역사적, 정서적 공통점이 적지 않다.
② 폴란드는 1989년 공산체제 붕괴 이후,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 이후 잘못된 길로 갔다며 과거 청산에 분주하다. 정권 실세의 개인적 수난사와 관련이 깊다.
③ 10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실세는 뇌물, 법무장관은 드루킹 같은 인신공격 조작 연루가 폭로된 폴란드. 절대 신념은 절대 부패를 낳는가.
●쇼팽…조성진의 피아노를 좋아하세요
2015년 10월 20일 미소년 같은 조성진이 폴란드의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금메달을 걸어준 이가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연주가 뛰어난 것을 보면 쇼팽은 한국과 폴란드의 공동 작곡가인 것 같다”라고 덕담을 한 사람 말이다.
쇼팽(1810~1849)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아…또 조국이다) 폴란드는 1772년과 1793년, 그리고 1795년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2차분할 때는 제외)에 갈라져 먹혔던 약소국이었다.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외세가 힘으로 우리에게 빼앗은 것을 칼로 되찾으세”라는 폴란드 국가는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끝나는 우리 애국가와 참 비슷하다(“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는 좀 슬프다).
“한국과 폴란드는 게걸스러운 주변 강대국들 때문에 상당 기간 동안 지도 위에서 사라져버린 적도 있었다”고 존 미어샤이머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한국어판 서문에서 콕 찍어 비교했다. 약소국은 죄가 없다! 평화를 사랑했을 뿐…이라고 해봤자 소용없다. 모든 나라의 운명은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의 행동 및 결정에 의해 일차적으로 결정된다는 게 미어샤이머의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이다.
그 이론대로라면 2차 세계대전 뒤 식민지 독립과 새 국가 탄생이 당시 최강국 미국과 소련의 결정에 좌우된 건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일 뿐이다(억울하면 가장 막강한 힘을 갖든가, 아니면 막강 국가의 동맹이 되든가…).
●’동양의 폴란드‘라 불렸던 한국
연합국 간 가장 논쟁과 갈등을 일으킨 곳이 폴란드와 ’동양의 폴란드‘라 불렸던 한국이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세력 범위를 좌우할 지정학적 요지였기 때문이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은 폴란드에 대해 ①국내외 ’민주적‘ 정당 및 사회단체들과 협의해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②임시정부가 총선거를 실시해 정부를 출범시키기로 정했다. 한국에 대해선 신탁통치가 언급됐지만 결국은 폴란드 모델이 적용됐다(김진웅 경북대 교수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와 한국에서의 정부 수립과정 비교).
종전 전에 이미 폴란드를 점령한 소련에 ‘민주적’이라는 건 공산주의를 의미한다(이 해석 역시 한국에서 그대로 적용됐다). 폴란드가 공산주의자들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거기서 실시한 ‘자유선거’로 공산 정권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될 뻔했다. 남한에 미군이 진주하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소련과 북한의 억지에 결사반대해 공산화를 면했을 뿐이다. 북한은 지금도 미 제국주의가 대한민국을 지배한다며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대남전략으로 삼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한사코 외면하는 세력은 우리도 과거 폴란드처럼 됐어야 한다는 건지, 그래서 분단 극복과 미군 철수를 외치는 건지 의심스럽다.
●과거청산법 추진하는 폴란드
폴란드는 1989년 공산지도부-반체제 인사들 간의 ‘협상혁명’과 ‘선거혁명’을 통해 평화적으로 공산체제를 무너뜨린 대단한 나라다. 그럼에도 현 실세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법과정의당 대표는 지난 30년간 폴란드가 걸어온 길이 잘못됐다며 과거청산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과거 공산세력이 기득권을 그대로 이어왔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폴란드 민주화를 이끈 자유노조 지도자이자 대통령을 지낸 레흐 바웬사도 공산당 이중첩자였다며 압박한다.
여기엔 카친스키의 개인사가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그는 공산세력과도 협조해야 한다는 바웬사의 자유보수 우파와 2001년 결별하고 법과정의당을 창당했다. 도덕적 가치와 정부의 경제 개입을 내건 포퓰리즘 공약으로 2005년 집권했지만 그가 밀어붙인 과거정화법, 미디어규제법 등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뒤집히는 등 국정 혼란을 몰고 왔다(재집권 뒤 헌재법부터 바꿔 장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2007년 조기 총선에서 카친스키 내각은 정권을 잃었다. 이원집정제인지라 대통령직만 유지하던 쌍둥이동생 레흐 카친스키는 2010년 러시아 땅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고 말았다(포퓰리즘으로 집권… 불의의 죽음… 좀 비슷하지 않은가).
●국정과 역사의 사유화…낯설지 않다
과격성으로 민심을 잃었던 카친스키는 자신은 철저히 뒤에 숨은 채 새 얼굴을 내세워 2015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동생이 암살당했다고 믿는 그는 식민 종주국이었던 러시아는 물론, 과거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카친스키는 30년 전의 공산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법과 제도를 만든 것이고, 폴란드의 모든 문제가 여기서 비롯됐다고 믿는다”고 프리덤하우스는 분석했다. 이를 뒤엎으려면 세 번은 더 집권해야 하는데, 2007년엔 개혁을 세게 밀어붙이지 못해 실패했다는 ‘잘못된 교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부친이 나치 독일에 저항했던 전력 때문인지 카친스키는 독일에 나치 점령 때의 피해 배상을 요구하면서,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연합(EU)과도 마찰을 빚고 있다. 국정의 사유화, 역사와 정의(正義) 사유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니 우리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세계적 흐름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백번을 양보해서 국민이 좀더 잘살게 된다면 또 모른다.
●장기집권 노리는 여당, 총선 승리할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기득권세력의 반칙과 특권을 공격하며 깨끗한 정치, 가톨릭의 전통적 가치를 강조해온 법과정의당도 예외가 아니다.
카친스키는 집권당 초대형 빌딩 공사와 관련해 외국 사업자와 거래했다는 녹음 테이프가 올 초 폭로돼 부패 의혹을 사고 있다. 카친스키의 아바타로 이름난 즈비그뉴 지오브로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은 10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야당 정치인들을 음해하는 공작을 펼치다가 녹음테이프가 폭로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물론 차관 해임으로 꼬리를 잘랐다).
그럼에도 법과정의당은 최저임금 2023년까지 2배 인상 같은 참 희한하게 비슷한 공약으로 총선 승리를 노린다. 우리나라 기업도 많이 진출해 2018년 경제성장률 3.4%를 올리는 등 지금까지는 호조세지만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부담이라고 우려한다.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개헌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헌법이 국가 의지(사실은 지도자의 의지) 실현을 막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바꾸겠다고 카친스키는 공언했다.
●참 닮은 폴란드와 한국…행운을 바란다
부디 잘되길 바랄 뿐이다. 외침(外侵)과 고난의 역사를 지닌 폴란드와 우리나라는 국민성이 참 많이 닮았다. 폐쇄적이지만 개방적이고(임기응변에도 강하다), 비관적이지만 또 낙관적이고(폴란드 사람들도 곧잘 술로 푼다), 너그럽지만(우리끼리 잘 봐준다) 시기 질투도 적지 않다. 정치와 논쟁을 좋아해서 폴란드 사람 둘이 만나면 정당 세 개가 생긴다는 말도 있다.
좋은 지도자는 국민의 좋은 점을 크게 발전시킨다. 1차 세계대전 직후 폴란드 최고지도자였고, 1926년 쿠데타로 다시 집권했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희생된 군인들은 어느 편에서 싸웠든 모두 사랑하는 폴란드를 위해 희생되었다”며 정치적 보복 없는 나라를 추구했다고 한다(정병권 한국외국어대 교수 ‘폴란드 민족성과 의사소통 방식’).
카친스키처럼 과거만 바라보는 지도자, 폐쇄성과 시기 질투 같은 부정적 정서를 자극하는 지도자가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더구나 법치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려운 법이다. 조국을 법치의 머리 위에 놓는 지도자가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면… 세계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쓸 일이다.
김순덕 대기자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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