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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9-②장기만큼 볼만한 '구경꾼 스타일'

바람아님 2014. 2. 20. 00:13
    침묵형· 중계형·기어이 끼어드는 참견형…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불구경 다음으로 재밌다는 게 싸움구경이던가요. 종묘광장공원에 모인 할아버지들 사이에 이것들 못지않게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장기 구경'입니다. 장기도 전투이니 크게 보면 싸움구경의 범주에 들어가겠군요.

공원에 펼쳐져 있는 장기판은 20~30개. 바둑판 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구경꾼은 두 배 이상 많습니다. 장기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바로 옆에서 훈수 두는 맛인가 봅니다. 두 명 넘게 구경꾼이 있는 곳에는 십중팔구 장기판이 있습니다. 보통 30분이면 한 판이 끝나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하기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딱, 딱' 판과 말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효과음과 "장이요" 소리가 구경할 맛을 더합니다.

남의 경기를 지켜보는 구경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이들에겐 나름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입을 꼭 닫고 장기판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침묵형 구경꾼'.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형입니다. 이런 침묵형 구경꾼 중에는 아예 휴대용 낚시의자를 펴서 자리를 떡하니 잡고 구경하는 할아버지도 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말도 많아지는 법. 구경꾼이 세 명 이상 몰린 장기판에는 장기를 두는 사람보다 더 분주한 할아버지들이 있습니다. 바로 '중계형 구경꾼'들인데요. 이들은 눈으로만 보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장기 말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기 바쁩니다. "상(象)이 넘어갔네", "차(車)로 포(包)를 안 먹고 마(馬)를 잡았네", "차(車) 피한다고 졸(卒)이 양쪽에 있는데 들어갔잖어" 등 중계를 듣고 있으면 축구경기 캐스터가 따로 없습니다. 내친김에 판세를 분석하는 할아버지들도 있습니다. "둘이 엇비슷해보여도 포(包)도 있고 상(象)도 있는 홍(紅)이 좋네. 청(靑)이 아까 포를 안 먹은 것이 크다 커."

중계형 구경꾼보다 더 적극적인 할아버지들은 '참견형 구경꾼'입니다. 이들은 중계는 물론이고 온갖 혼수를 쏟아냅니다. "에이 뭐 하는 거야. 그냥 그거 먹어버려. 아니지, 아니야. 청은 거기 있으면 안 돼. 얼른 도망가야지." 잠자코 듣기만 하던 할아버지가 결국 입을 때기 일쑤입니다. "아이고 시끄러. 동네 할아버지는 여기 다 모였나봐"라며 손을 내젓지만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이거 뭐 어떻게 하라고.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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