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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11-① "외로움, 그 허기도 달랜다" 원각사 무료급식소

바람아님 2014. 2. 22. 20:16
빅시리즈⑪ 인정을 퍼주는 곳, 원각사 무료급식소

"남한테 피해 안주려 최대한 빨리 먹고간다"
15년간 정부 지원없이 봉사·기부만으로 운영
하루 최대 300명 찾아 식구같이 살가운 분위기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파고다공원 후문에 위치한 낡은 건물. 이 건물 2층에 자리한 '원각사 무료 급식소'. 이곳에선 15년 동안 휴일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어르신들에게 점심식사를 공짜로 대접하고 있다.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이다.

지난달 25일 오전 11시. 배식이 시작되려면 1시간이나 남았지만 벌써 열댓 명의 노인들이 건물 주변에서 점심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익숙한 듯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질서정연하게 파고다공원 담장을 따라 줄을 서 있다.

그런데 그 줄에 '홍일점' 할머니 한 분이 섞여 있다. 파고다공원 일대에 노인들 대부분은 할아버지들인데 할머니라니. 겨자색 외투를 걸친 이금례 할머니(72). 할머니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울산이라고 했다. 환갑을 갓 넘긴 10년 전 남편을 잃은 후 거처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단다.

"기냥 여기저기 청소해주고 나서 돈 벌어. 그런디 지금은 일이 없어. 교회에서 절에서 밥도 주구 가끔 돈도 쥐어 주구. 그런 디가 있어서 고맙지. 안 그라모 우리 같은 할마시(할머니)는 굶어 죽지." 할머니는 매일 하루에 7000~8000원 하는 찜질방에서 묵는다. 여벌의 겉옷이 없는 '단벌신사'라 목욕탕에서 가끔씩 옷을 빨아 입는다고 했다.

장가간 큰아들은 여전히 울산에 살고 있단다. 그런데 할머니가 10년째 객지에서 고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아들네에 가끔 가긴 가. 가면 용돈도 20만원씩 받고. 근디 며느리는 자식이 아니라 남이니께 아무래도 있기가 눈치가 보이드라고…. 아(손자)가 둘 있어. 며느리가 갸들 키우느라고 정신도 없고." 아침저녁으로 추운 날씨에도 얇은 외투 하나로 견뎌야 하는 할머니는 덤덤하게 "시장서 내의는 하나 사 입을라고" 했다. 서울에 온 뒤 눈이 시큰하고 눈물이 자주 나는 병에 걸렸는데 연고를 써도 소용없단다. 비용이 많이 나올까 병원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단다.

무료 급식소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할머니와 비슷한 처지다. 원각사 주지스님인 보리스님(67)은 "100명 중 70명은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이고 나머지는 같이 밥을 먹을 친구를 찾아서 온 사람들"이라며 "공원에 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심적으로 의지가 되고 대화 상대도 되기 때문에 온다"고 말했다.

보리스님은 처음(1994년)엔 파고다공원 안에서 어르신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주는 일을 시작했다가 1998년 2월부터 지금의 자리에서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평일에는 100~150명, 휴일에는 250~300명의 노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단순히 계산해도 일주일에 1000~1350명의 끼니를 해결해 준 셈인데 연간으로 따지면 그 숫자가 어림잡아 5만~7만명에 이른다. 이걸 15년을 쉬지 않았으니 그간 넉넉잡아 100만명 분의 식사를 제공한 것이다. 이 인원을 한 줄로 촘촘히 세우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또 하루에 보통 20㎏짜리 쌀 1.5가마가 쓰인다고 하니 15년간 사용한 쌀의 양만도 8200여가마에 이른다.

원각사 무료 급식소는 정부의 지원 없이 종교·시민단체의 기부금과 자발적인 봉사활동으로 운영된다. 이곳을 처음 찾아간 건 지난달 25일. 이날은 '법화당' 소속 여성 불자 7명이 식사 준비와 배식, 설거지를 맡았다. 매달 넷째 주 금요일마다 봉사를 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기자도 그 틈에 끼어 팔을 걷었다. 정오가 되자 번호표를 지급받은 할아버지들이 하나둘씩 법당으로 들어왔다. 법당 입구에 놓인 상자 안에는 검정색 비닐봉지가 여러 개 있었는데, 이 봉지들의 용도는 어르신들의 '신발주머니'다. 불상을 모신 53㎡(16평) 크기의 법당에 세로로 긴 밥상 4개를 바닥에 놓으면 한자리에서 총 32명이 식사를 할 수 있다. 그 후부터는 자리가 비면 한 명씩 채워 앉아야 한다.

이날 메뉴는 콩나물 비빔밥과 아욱국이 전부였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할아버지들의 불편한 다리 탓에 이따금 배식이 지체됐지만 뒤에서 채근하는 목소리도 없다. 밥과 국을 퍼주는 자원봉사자들은 이곳 어르신들과는 가족처럼 살갑다. 가끔씩 할아버지들이 "밥 좀 더 담아줘"하면 "남기면 안 돼요"라고 으름장을 놓지만 티격태격 오가는 그 말에 정이 담겨 있다.

식사 도중에는 밥그릇에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그렇게 배식을 시작한 지 5분이 지났을까. 저쪽에서 벌써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할아버지가 있다. 순간 "남한테 피해 안 주려고 최대한 빨리 먹고 나간다"던 한 자원봉사자의 말이 떠올랐다. 다 먹은 밥그릇과 국그릇을 겹쳐 내게 건네줬다. 그릇을 받고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나지막이 "잘 먹었습니다"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렇게 다 먹고 난 그릇의 설거지는 배식과 동시에 숨가쁘게 진행됐다. 설거지한 그릇은 급하게 물기만 말려 곧바로 다시 배식에 쓰였다. 자원봉사자 7명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커다란 밥솥 2개에 담긴 흰 쌀밥이 바닥을 보이자 배식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에 걸쳐 배식이 끝났다.

국을 담당했던 박종숙(68·가명)씨는 "예전에는 노숙인들도 많이 왔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 요즘엔 옷차림 말끔한 할아버지들도 많이 있어. 집에서 혼자 밥 먹는 것보단 사람들이랑 모여 먹는 게 훨씬 낫다더라"고 말했다. 번호표를 나눠주던 처사(남자 불자)는 언제나처럼 하루에 몇 명이 다녀갔는지 달력에 표시를 했다. 이날은 '112'를 적었다. 그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최근에는 오는 사람이 좀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급식소가 운영하지 않는 공휴일에는 이곳을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지난 개천절에는 334명, 한글날에는 287명이 다녀갔다.

부엌일이면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자원봉사자들도 이젠 할머니가 됐다. 임순옥 할머니(67·가명)는 "우리도 한 명 빼고는 다 60세 넘었어. 봉사하고 나면 여기저기 안 쑤신 데가 없어"라며 바닥에 털썩 앉았다. 뒤늦게 점심을 먹던 도중 그는 "집에 가선 손자 보느라 골병이 들지만 나한테 폭 안기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며 사는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한다. 또 다른 할머니는 수년간 지병을 앓던 딸을 먼저 보낸 얘기를 하다 기어이 눈물을 훔쳤다. 무료 급식소를 찾는 노인들도, 이곳에서 10년간 인연을 쌓았던 자원봉사자들도 그렇게 또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 입구 간판에는 크진 않지만 정갈한 글씨체로 이같이 적혀 있다. 문구의 의미가 궁금해져 원각사 주지스님인 보리스님(67)에게 물었다. 그는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존중하는 마음과 함께 그들이 없으면 원각사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답했다.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근 20년간 '업'으로 삼아왔으니 그 말이 빈말은 아닌 듯하다. 스님은 1994년부터 파고다공원 안에서 노인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주며 무료 배식을 시작했다. 이후 불자들이 한두 명씩 무료 배식에 동참하면서 일주일에 이틀은 국수를 삶아 주기도 했다. IMF 경제위기로 수많은 퇴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졌던 1997년에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의 위탁을 받아 소고깃국과 쌀밥을 하루 최대 1200여명에게 대접하기도 했단다. 이듬해 공원 성역화 사업으로 음식물 반입이 전면 금지되자 근처 건물 2층을 월세로 임차해 지금의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세웠다.

무료급식은 정부의 지원을 받진 않지만, 오랜 기간 인연을 함께 한 30여개 불교·시민단체와 기업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덕분에 인건비는 전혀 들지 않는다. 스님은 "간혹 건강상의 문제로 봉사를 계속하지 못하는 분들도 생기지만 기존 봉사자들의 권유로 새 식구가 들어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한 신도가 나주 쌀 100가마를 선뜻 내놔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정원 32명인 작은 법당 안에서 1시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100명 이상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어르신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덕분이다. 스님은 "사람이 많다 싶으면 어르신들 스스로 어느 때보다 얼른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비켜준다"고 말했다. 원각사는 몸과 마음이 피로한 어르신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철에는 밖에 있다가 따뜻한 법당 안으로 들어와 몸이 노곤해진 분들이 벽에 기대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경제 사정도 나아지고 무료급식소도 여러 곳 생기면서 원각사에서 점심을 먹는 이가 전보다 줄었다. 하지만 스님은 "또 다시 경제가 어려워져 제2, 제3의 IMF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건강이 받쳐준다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면서 "한 끼 배고픔을 달래주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고 되물었다. 요즘 보리스님은 서울에서 경기도 포천까지 수시로 왕래한다. 무료급식에 쓸 배추와 무를 재배하는 일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곧 가을걷이를 할 계획인데 다가오는 겨울 어르신들에게 이 재료로 만든 친환경 김치를 내놓을 생각에 스님은 벌써부터 들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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