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22] 화가 다비드까지 활용한 '정치인' 나폴레옹

바람아님 2014. 4. 3. 18:07

(출처-조선일보 2014.02.13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자크-루이 다비드, 서재의 나폴레옹, 1812년, 캔버스에 유채, 203.9×125.1㎝,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소장.
자크-루이 다비드, 서재의 나폴레옹, 1812년, 캔버스에 유채, 203.9×125.1㎝,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소장.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루이 16세의 왕실 화가로 시작해 로베스피에르의 총애를 받는 혁명의 기수가 됐다가 나폴레옹의 제1 화가로서 권세를 누렸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미술가 중 하나였다. '서재의 나폴레옹'을 보면 과연 왜 그토록 많은 권력자가 너 나 할 것 없이 다비드를 찾았는지 확연해진다.

황제 나폴레옹은 튈르리궁의 서재에서 일을 하던 중 불현듯 찾아든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무거운 의자를 뒤로 밀고 막 자리에서 일어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서 있다. 그러나 그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마치 연극 무대의 배우들인 양 각자 주어진 대사를 충실하게 읊고 있다.

짤막해지도록 타들어간 양초는 나폴레옹이 지난밤부터 계속 깨어 있었음을 알려준다. 시계를 보니 무려 새벽 4시 13분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단추 풀린 옷소매,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바지는 이 시간까지 잠을 잊고 업무에 몰두한 황제의 열정을 증명한다.

책상 주위에 흩어진 펜과 온갖 서류, 두꺼운 책자들 가운데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의자 위의 두루마리다. 그 표제 중 일부인 'CODE'가 선명하게 보인다. 나폴레옹은 지금 역사에 길이 남은 그의 업적인 프랑스 민법, 즉 'Code Napoleon'을 구상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는 새로운 법령에서 신분의 특권을 없애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많은 이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나폴레옹의 이미지는 불패의 군인이다. 그러나 다비드는 칼을 잠시 풀어 둔 채 프랑스인들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하는 지적이고 성실한 '정치인'나폴레옹을 만들었다. 이토록 뚜렷한 목적을 위해 그의 그림에서는 떨어진 단추 하나까지도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