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양상훈 칼럼 - "北이 화학무기 쏜다면 대피하지 않겠다"

바람아님 2014. 5. 6. 15:45

(출처-조선일보 2014.04.17 양상훈 논설주간)

골동품 같은 北 무인기에 우리 사회가 휘둘린 건
北의 軍 능력 과장된 데다 우리는 몸 사리기 때문
내 팔 주고 敵 심장 자를 각오면 북 전략은 물거품

양상훈 논설주간 사진북한 무인기(無人機)를 무시할 수는 없다. 아직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무인기 사건에서 눈에 더 들어온 것은 '위협'이 아니라 '상상 이하'인 북한 재래식 군사력의
실태였다. 우리 무인기 동호인들은 "북한도 명색이 국가인데 이런 수준이냐"고 혀를 찬다고 한다.

과거 경제 부처에서 우리의 적정(適正) 국방비 산출을 위해 비공개로 북의 전쟁 수행 능력을 평가한 적이
있었다. 복잡한 문제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평가는 간단했다고 한다. 북이 전면전에 대비해 비축해놓은 
군사 연료가 1.5일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동안 비축량이 늘었다고 해도 결코 10여일분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북이 기습으로 서울을 점령한다는 등의 가설은 소설에 더 어울리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북이 군사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은 천안함·참수리정 공격이나 연평도 포격처럼 뒷골목에 숨어 있다 방심하고 지나가는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기습밖에 없다. 
이런 단발성 도발 능력과 북의 총체적 군사력을 혼동하면 우리의 군사 대비에 왜곡을 낳을 수 있다.

북의 공군과 해군은 '군(軍)'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낡았다. 
북에서 가장 신형이라는 미그29 전투기 기지를 김정은이 방문했는데 그 사진에 나온 전투기는 마치 골동품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북은 미그29기 1~2개 대대(16~32대)를 운용하고 있으나 가동률이 50%나 될지 의문이다. 북 공군이 한·미군의 훈련에 맞춰 자체 훈련을 강화하면 감당하기 힘든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 수명을 이미 20~30년씩 넘긴 다른 기체들은 진짜 골동품으로서 자폭 공격을 시도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나마도 대부분 격추되고 말 것이다.

북의 낡은 잠수함은 천안함을 폭침했다. 바닷속으로 숨을 수 있는 잠수함은 원천적으로 위협이 된다. 
그러나 북 잠수함은 1996년 동해 안인진에서 기관 고장으로 좌초했고, 2년 뒤엔 속초에서 어부들 그물에 걸렸다. 
세계 잠수함 역사에 희귀한 사건이었다. 
북한 잠수함은 전시 작전용이라기보다는 천안함 공격과 같은 평시 테러용으로 봐야 한다.

북은 연평도 포격 도발을 1년 이상 준비했다. 
그것도 김정은의 각별한 관심 아래 준비했는데 미리 좌표를 선정하고 훈련한 다음에 쏜 포탄의 절반 가까이가 연평도가 아닌 바다에 떨어졌다. 불과 12㎞ 떨어진 목표물인데 이런 결과라면 이것을 '포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연평도에 떨어진 포탄의 4분의 1 이상은 불발탄이었다. 이게 북한군 재래식 전력의 실상이다. 
우리 수도권을 겨냥한 북의 장사정포도 실전 상황에서 어떤 성능을 보일지 북한군조차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군 탱크는 우리 군 주력인 K1 계열 탱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K1 탱크가 먼저 보고 먼저 쏠 수 있다. 
탈북한 북한군 탱크 조종수는 구식 북한 탱크나마 "1년에 100m도 몰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일성대 출신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북의 생화학 무기에 대해서도 "항생제나 백신도 생산 못 하고, 화학 공장은 고철로 
변한 북한이 정말로? 북이 생화학 무기를 쏜다면 나는 대피하지 않고 그 성능을 직접 관찰할 용의가 있다"고 단언했다.

북이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핵에 매달리고 있다. 북의 핵미사일은 큰 위협이나 재래식 군사력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엔 북의 재래식 위협을 과장하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국방 예산이 줄어들까 겁내는 군(軍)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 나면 큰일 난다'면서 돈 주고 북을 달래야 한다는 정치인이다. 양쪽 모두 북한에 대한 군사적·정치적 대비를 왜곡한다. 
북의 재래식 도발에 대비하되, 끌려다닐 이유는 전혀 없다. 
지금으로선 군사적 의미가 '제로'에 가까운 무인기 때문에 수백억~수천억원짜리 대응 장비를 수입하는 것이 바로 끌려다니는 
것이다. 북은 이런 출혈과 낭비, 혼란과 혼선을 노린다.

여기 찌르고 저기 누르며 다른 사람을 괴롭힐 궁리만 하는 불량배에게는 '내 팔을 내주고 네 심장을 자른다'는 각오가 가장 
확실한 대책이다. 우리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그런 각오를 보이는 순간 불량배는 도망칠 수밖에 없다. 반면 나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겠다고 몸을 사리면 불량배는 마음대로 활개 치게 돼 있다. 불량배가 쓸 카드도 한없이 늘어난다.

북은 앞으로 핵미사일로 미국을 견제하면서 재래식 도발과 테러로 우리를 괴롭혀 정치적·경제적 효과를 얻으려 할 것이다. 
북의 이 전략은 우리가 몸 사리지 않고 피 흘릴 각오만 하면 물거품이 된다.
불행한 것은 우리 군부터 이런 각오와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군은 싸우는 기술과 방법이 아니라 비싸고 좋은 장비를 사는 데만 신경을 쏟고 있다.
지금 우리 군의 장비는 북에 비해 좋아도 너무 좋다. 
아예 전력 증강 예산을 끊어버려야 우리 군의 눈빛이 달라질지 모르겠다.